책 이야기

실재의 사회적 구성: 지식사회학 논고

바람2010 2015. 12. 25. 18:24

 

  The Social Construction of Reality: A Treatise in the Sociology of Knowledge.

Peter L. Berger and Thomas Luckmann. 1966. Garden City, N.Y.: Doubleday

하홍규(), <실재의 사회적 구성: 지식사회학 논고>, 문학과지성사, 2013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생각하는 인간homo sapiens? 정치적 인간homo politicus? 노동하는 인간 homo faber? 저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들이 만든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 homo socius이다. 그리고 인간과 사회의 관계는 변증법적이며(번역본 102, 이하 동일), 이 변증법은 사회를 인간의 산물로 만드는 외재화externalization, 사회를 객관적인 실재로 만드는 객관화objectivation, 인간을 사회적 산물로 만드는 내재화internalization라는 세 계기를 가진다. 저자들은 이 계기들을 중심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와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한다. 이를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주며, (지식)사회학이 인문학이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을 살펴 보면,

먼저 서론 지식사회학의 문제에서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낯선 지식사회학이라는 학문 분야와 저자들의 문제의식을 개괄한다. 저자들은 상식적인 지식이 사회의 존재를 위해서 필수적인 의미의 구조the fabric of meaning를 구성하며, 따라서 지식사회학은 사상보다는 상식적인 지식을 주된 초점으로 하고, 실재의 사회적 구성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31)고 주장한다.

다음으로 1일상생활에서의 지식의 기초들에서는 일상생활의 실재를 현상학적으로 분석하며, 일상생활에서의 사회적 교섭, 언어와 지식을 다룬다.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2객관적 실재로서의 사회에서는 인간과 사회의 변증법의 세 계기 중 외재화와 객관화를 다루는데, 제도화와 정당화가 그 중심을 이룬다.

모든 인간 활동은 습관화되기 쉬운데(90), 여러 유형의 행위자에 의해 습관화된 행위들의 상호적인 전형화가 이루어지면 제도화가 발생한다(93). 제도화되어 있는 일차적 객관화를 객관적으로 사용 가능하게 해주고, 주관적으로 타당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정당화의 기능인데(146), 이는 언어, 이론, 상징적 세계와 관련된다.

또한 모든 정당화들은 세계-유지universe-maintenance의 장치이며(163), 사회 안의 권력은 결정적인 사회화 과정을 좌우하는 권력을, 따라서 실재를 생산하는 권력을 포함한다(183). 때문에 기존의 권력 지위를 유지하는 데 관심 있는 이들과 세계-유지의 독점적 전통을 관할하는 인력들 사이에 깊은 친화성이 있다(187).

제도와 상징적 세계들은 구체적인 사회적 위치와 사회적 이해관계를 가진 살아 있는 개인들에 의하여 정당화된다. 정당화 이론의 역사는 항상 전체로서의 사회가 갖는 역사의 부분이다. 어떠한 사상의 역사도 일반적 역사의 피와 땀으로부터 분리되어 일어나지 않는다(194-195). 따라서 사회 변동은 항상 사상의 역사와 변증법적 관계에 서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195).

2부와 함께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3주관적 실제로서의 사회에서는 사회화를 통한 실재의 내면화, 내면화와 사회구조의 관계, 그리고 정체성 문제를 다룬다. 내재화를 중심으로 저자들의 주장을 주관적 의식의 수준에 적용함으로써 지식사회학을 사회심리학의 문제들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론 지식사회학과 사회학 이론에서 저자들은 인문주의적 사회학을 주장한다. 사회학은 인문학이며, 역사학과 철학 모두와의 지속적인 대화 가운데 수행되어야 하고, 역사적 과정에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간이 살고 있으며, 인간을 만드는 사회라는 적절한 탐구 대상을 잃지 말아야 한다(283)는 것이다.

 

사회과학 공부를 위한 출발점으로 좋은 책

이 책은 저자들이 지식사회학의 과제라고 주장하는 실재의 사회적 구성에 대해 체계적이고 설득력 있게 그리고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 보면, 인간과 사회의 발전에 대한 입문서라고 할 수 있으며, 정치사회학, 종교사회학, 심리학 등 사회학 전반의 근원을 살필 수 있는 개요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과 사회의 발전 혹은 사회학 개요라 이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대학생은 곧 지성인이라 여겨지던, 그래서 사회와 역사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좋았던 옛날은 물론이고, 지금처럼 실용 지식에 밀려 인문사회과학이 위기인 때에도 사회과학 공부를 위한 출발점으로 삼기에 좋은 책이다.

 

까칠한 독자의 몇 가지 아쉬움

우선 핵심 개념의 엄밀성, 타당성 문제이다. 저자들은 실재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지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현상에 부속하는 특질, 지식현상이 실재하며 특정한 특성들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으로 정의한다(11). 그러나 이 두 핵심 개념의 정의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지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현상우리 자신의 의지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현상과 어떻게 다른지, 왜 후자가 아니라 전자이어야 하는지 밝혀야 한다. 또한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지식확신으로 정의하는 이유와 의미도 설명될 필요가 있다.

둘째, 인간과 사회의 관계가 변증법적이라는 주장을 다시 접하게 되어 반갑긴 하지만, 이 주장이 행위 대 구조라는 난제를 우회할 수 있게 해주지는 않는다. 이 책의 내용은 대체로 구조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저자들이 명확히 밝히고 있지는 않고, 때문에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둔다.

셋째, 습관화를 노력의 경제economy of effort와 연결시켜 제도화의 기원으로 삼는 것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어찌 보면 동물의 본능적 행동은 인간의 습관보다 더욱 확실한 반복행위이며, 더욱 경제적이지 않은가?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 그리고 사회의 출현과 관련해 노동의 의미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아마도 간결하고 압축적인, 그리고 비논쟁적인 서술로 인해 불가피했겠지만, 인간과 사회의 발전이 퇴행 없는 발전으로 비추어지며, 전체적인 내용과 상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판단 중지하게 된다. 이로 인해 여러 해석과 반박의 여지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지금 여기 우리에게 주는 의미

출간된 지 50년 가까이 지난 이 책이 지금 여기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역자의 주장처럼 사회적 구성이라는 생각은 세계는 우리가 만든 것이기에 우리가 바꿀 수 있다는, 억압받는 자들에게 폭로와 비판 그리고 해방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훌륭한 사회학적 무기일 수 있다(298). 이 때문에 뒤늦게나마 한국어 번역본이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반대로 사회적 구성이라는 생각은 권력에 의해 조작manipulation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열어주며, 역사적으로는 이것이 훨씬 더 빈번하고 강하게 이루어져 왔다. 지금 우리 사회도 그렇지 않는가? 역사마저 국정화하겠다고 하면서.

역자의 탄식처럼 지금까지도 사회학자들이 사회학은 인문학의 하나다라는 주장에 귀 기울이지 않는(298) 이면에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처럼 사회 권력과 학문 권력, 지형의 문제가 있을 것이고, 따라서 이의 극복은 사회와 학문 모두에서 같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회는 인간의 산물이다. 사회는 객관적인 실재이다. 인간은 사회적 산물이다(102).

  

<2015.11.25()~11.28() 읽고, 11.29()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