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대기업의 성장과 노동의 불안정화 - 한국 자동차산업의 가치사슬, 생산방식, 고용관계 분석]을 읽고서 …

바람2010 2013. 3. 27. 20:24

 

대기업의 성장과 노동의 불안정화

한때 [도요타의 어둠]이라는 책이 관심을 받은 적이 있다.( [도요타의 어둠], 도요타만의 어둠일까?) 당시 많은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관심은 당연히 "그럼 현대차는?"이었다.

 

잇따른 법적 판결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철탑 고공농성과 여론의 질책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막대한 순익과 현금 보유고를 자랑하고 있음에도, 왜 현대차는 불법 파견 노동자들-'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지 않는가? 왜 현대차를 비롯한 대기업들, '경영여건이 좋은 기업들'에서도 그렇게 많은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는 걸까?

 

재벌 산하 대기업들과 계열사들은 잘 나가는데, 그 중 일부는 이른바 'Global Player'가 되었는데, 왜 중소기업과 노동자들, 다수 국민의 삶은 팍팍해지는걸까? '원하청 불공정 거래'는 언제부터 문제였을까? 이 오래된 관행이 왜 최근에 더 심각해지고, 더 쟁점이 되고 있을까? '경제민주화'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제대로 추진되기는 할 것인가?

 

잘나가는 대기업의 노동자들, 이른바 '귀족 노동자들(?)', 그리고 '공공의 적(?)'으로 매도당하는 대기업의 '귀족노조들(?)'은 왜 고립되었을까?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에 맞게 연대와 단결을 통해 문제 해결의 선두에 서지 못하고, '이기주의자'로 낙인찍히게 되었을까?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갖고 있는, 이런 의문들에 대한 답을 자동차산업의 구조적 측면에서, 이른바 '자동차산업의 가치사슬(value chain) 분석'을 통해 제시한다.

 

한국자동차산업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현대차그룹은 외환위기 이후 축적전략을 변경한다. '잉여가치 생산'보다 '잉여가치 이전'에 집중하고, 유연표준화를 통해 가치사슬을 재편한다. 그 결과, 완성사의 생산업무 중 많은 부분이 모듈기업으로 이전되고, 완성사의 생산은 단순조립공정화한다. 완성사의 생산업무 일부를 넘겨 받은 모듈기업은 기존의 부품가공 대신 모듈조립 위주로 생산을 재편하게 되고, 하위부품기업은 다시 모듈기업으로부터 넘겨 받은 부품가공을 위해 설비투자와 자동화를 확대한다. 이런 일련의 재편을 통해 산업 전반에서 탈숙련화가 진행되고,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가치/중요성은 떨어진다. 이제 노동자들은 가치 창출의 주체가 아니라,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인건비 절감을 위해 다양한 수단-고용 축소, 임금 억제, 노동강도 강화 등-이 활용된다.

 

유연표준화는 생산과정의 표준화, 자동화, 단순화, 탈숙련 등을 가져오고, 이에 따라 광범위한 '생산의 외주화와 비정규직의 확대'가 진행되며, 자동차산업 기업 간 '종속적 관계'는 심화된다. '포섭적 통제'에서 '배제적 통제'로 악화된다.

 

완성사가 하위기업으로 '비용 부담과 유연성'을 전가하면서 하위기업은 이 비용 부담과 유연성 압박을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자신의 하위 기업에게 다시 전가한다. 산업의 위계를 따라 하향하면서 '경영 여건', 당연히 '노동조건'도 하락하고, 고용은 불안해지고, 임금은 억제된다. 상하위 기업 간 격차가 확대되고, 따라서 노동자 간 격차도 확대된다.

 

개별 기업단위에서 양보교섭이 일상화된다. '생산성 향상/노동강도 강화/장시간 노동' '고용안정'이 교환된다. 하위 기업의 노동조건 하락과 고용불안은 거꾸로 상위기업에 영향을 미쳐 상위 기업의 내부노동시장은 축소되고, 상위 기업의 노동자들도 고용 불안을 떨치지 못한다.

 

이러한 산업 전반의 변화에 노동조합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언제나 노동조합의 대응 방식은 기본적으로 둘 중의 하나이다. '연대냐, 개별이냐?' '함께냐, 각자냐?' 이 책은 '대표적인 연대 시도'의 실패를 소개하면서, 연대 전략의 실효성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연대전략 대신 개별주의적인 전략, 즉 소속 기업 수준에서 노사교섭을 통해 조합원들을 보호하는 것에 집중해왔다고 이야기한다. 가치사슬-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있는 완성사에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들은 '잉여가치 이전'에 따른 성과의 일부를 나누면서 담합하고, 하위 기업들은 그 기업 수준에서 담합하면서, 산업 전반에 기업별 노사담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대응 관련해서는 이 책의 주장을 좀더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대표적인 연대 시도' 관련해, 이런 연대 시도가 실패해서 노동조합들이 연대전략의 실효성을 의심하게 되고 개별주의적인 전략으로 나아가게 된 것인지, 아니면 연대의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대표적인 연대 시도'가 제대로 추진도 되지 못했던 것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진실은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특히 완성사 노동조합의 태도는.

 

또한 이른바 '슈퍼 을'이라는 현대모비스에 대한 분석도 다소 아쉽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도와 관련해 현대모비스의 위치는 모듈기업 혹은 계열사 이상이다. '이전된 잉여가치'의 최종 귀착지는 과연 어디일까?

 

한 권의 책으로 이 모든 문제들을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본래적 문제의식에 충실한 것이 이 책의 장점일 수도 있겠다. 사실 이 책의 주요 내용들은 자동차산업과 노동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그렇다고 이 책에 대한 평가가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짧은 분량에 체계적으로 아주 잘 정리했다. 꼼꼼히 읽어 보면 '그림이 그려진다.' 그리고 '유연표준화와 숙련구조 변화'를 실증한 부분은 학문적 기여도 작지 않아 보인다. 이 분야에 계속 관심을 가져온 사람들에게도, 이제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어찌할 것인가?

 

우선 '잉여가치 이전'과 관련해서는 '법과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기업 간 위계가 명확하고 종속이 심각한 상황에서 '기업 간 자율'로 맡긴다는 것은 문제를 방치하는 것이다. 해결을 포기하는 것이다. 단호하고 완강한 '사회와 정치의 개입'이 필요하다. '2마트' '한 순간의 결단(?)'으로 수 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기로 했다. 현대차라고 해서, 자동차산업의 기업들이라고 해서 이 '한 순간의 결단(?)'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 결단(?) '남는 장사(?)'라고 판단하게 할 '사회와 정치의 개입', '단호하고 완강한 개입'이다. 이와 관련해 노동조합들의, 특히 완성사 노동조합들과 자동차산업노조인 금속노조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누구든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법이다.

 

자동차산업의 가치사슬구조 재편과 관련해서는 좀더 장기적이고 일관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 문제에 관련해서도 '사회와 정치의 개입'이 필요하겠지만, 산업 내부적인 노력이 더 중요할 것이다. 특히 '숙련'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사용자의 (생산과정) 탈숙련화 전략, 정부의 무관심과 직무유기에 더해 노동조합의 '숙련 기피'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왔다. 우리 노동조합도 이제는 숙련에 대한 정책과 노력이 필요하다.( [제도는 어떻게 진화하는가 – 독일•영국•미국•일본에서의 숙련의 정치경제])

 

노동조합은 또한 자동차산업 가치사슬 재편이 가져온 변화에 대응하여, 중요성이 낮아진 생산공장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전략적 중요성이 커진 기획연구개발마케팅 등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새로운 대안에 대한 모색은 '현실에 대한 진지한 분석과 대응'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기존의 관성에 머물면서 위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구태일 뿐이다. 치열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

 

첫 번째 첨부 자료는 이 책의 내용 전체를 요약한 자료이고, 두 번째 첨부 자료는 이 책의 3장과 4장 발표자료이다. 혹시 참고가 될까 싶어 첨부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권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을 사서 전체 내용을 직접 꼼꼼하게 읽어 보라는 것이다.

 

<2013.3.18 ~ 3.23 읽고 3.27에 쓰다.>

 

 

 

대기업의_성장과_노동의_불안정화_한국_자동차산업의_가치사슬,_생산방식,_고용관계_분석.docx

대기업의 성장과 노동의 불안정화 3장과 4장 20130325.ppt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