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바람2010 2012. 7. 26. 00:40

새삼스러운 이야기이지만, 김훈은 글을 참 잘 쓴다. 짧고 강한 문체, 인간의 심리와 이를 나타내는 배경에 대한 세밀한 묘사 이야기꾼의 글재주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본질을 꿰뚫는 힘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느꼈던 또 하나의 기쁨은 이순신에 대한 재발견이다. [칼의 노래]에 등장하는 이순신은 임금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종속적인 인물이 아니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나아갈 길과 자기 자리를 결정하는, 진정한 주인공이다. 임금 선조와 다른 신하들은 주변 인물일 뿐이다. 자기 입장에서 상황을 판단하고 스스로 행할 바를 결정하면서도 대의를 거스르지 않는 모습은 탁월한 정치인의 면모이다. 이런 면에서도 요새 보기 드문, 제발 나타났으면 싶은 인물이기도 하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소설 속에서) 이순신은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한다. 왜군과의 공개된 전쟁, 그리고 임금/조정과의 숨겨진 전쟁.

 

우리가 알고 있는 이른바 성웅 이순신은 군사정부의 필요에 의해 부각된 측면이 크다. 무능한 임금과 조정, 부패한 정치,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삶, 외침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나라, 이 와중에도 당파 싸움과 정치 놀음이나 일삼던 문신(文臣)들이 아니라 목숨 바쳐 나라를 구했던 무신(武臣), … . 여러 모로 군사정부가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심고자 했던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로 적격이었으리라.

 

왜란으로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때, 이순신과 다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다른 입장을 취했던 이들은 잘못했던 것일까? 임금과 신하 이순신의 갈등에 비해 이 문제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이순신의 입장이 당연히 옳은 것으로 여겨진다고 할까.

 

[남한산성]에서는 이야기가 다르게 전개된다. 역시 외침(병자호란)에 처한 상황이지만, 임금 인조는 항전이 아니라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고, 격렬한 전투도, 따라서 혁혁한 전과도 없다. 조용한 전쟁은 조선의 힘 없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침략자 칸의 관대함 때문이기도 하다.

 

선조와 달리 인조는 고뇌하는 임금이다. 국난의 해결보다 자신의 안위, 존엄이 더 중요한 신하들에게 둘러 싸여, 결국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지시하고 행하는 주체이다. 백성과 군사들을 걱정하고 살피는 임금이다. [남한산성]에서는 임금인 인조가 주인공이다.

 

[남한산성]에서는 남한산성에 갇혀 있는 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춰 이야기가 전개된다. 척화를 주장했던 김상헌과 화친을 주장했던 최명길은 다른 주장을 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한다. 주장의 근원이 같은 까닭이다. 어떠한 입장에도 기울지 않고, 언제나 옳은 이야기만 하는 영상 김류는 이들과 다른 종류의 인간이다. 이른바 진정성의 문제라고 할까?

 

[칼의 노래]에서와 달리, [남한산성]에서는 화친을 주장했던 최명길의 입장에 많이 기울게 된다. 상황이 달라서 일까? 화친이냐, 척화냐? 대결이냐, 타협이냐? 자주 겪는 상황이다. 특히 다수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사실 현실에서는 둘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마치 썀쌍둥이처럼. 그런데,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할 때, 어려워진다. 근본적인 입장과 원칙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상황과 현실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나의 선택을 하더라도 그것은 잠정적이며, 현실과의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계속 정정해가야 할 것이다. 정적이지 않고 동적인 과정이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겠지.

 

[현의 노래]도 격변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신라에 의해 가야가 정복되던 때. 다른 두 소설과 달리, 임금과 신하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는 않다.

 

셋 다 훌륭하지만,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칼의 노래]를 택해야 할 것 같다. 일단 [칼의 노래]를 읽으면, 내가 그랬듯이 다른 두 소설도 읽게 되지 않을까?

 


[칼의 노래]

: 2001년 봄에 쓰여지고, 2010.2.13~2.16에 읽다.

 

나의 전쟁은 나의 죽음으로써 나의 생애에서 끝날 것이었다.”(32)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적에게 있을 것이었고, 적이 나를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나에게 있을 것이었다. … 사실 나는 무인된 자의 마지막 사치로서, 나의 생애에서 이기고 지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나는 다만 무력할 수 있는 무인이기를 바랐다. 바다에서, 나의 무()의 위치는 적의 위치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그러므로 나의 마지막 사치는 성립될 수 없었다.”(41)

내 칼은 보이지 않는 적을 벨 수 없었다. … 이 세상과의 싸움은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졌다. 헛것은 칼을 받지 않는다. 헛것은 베어지지 않는다.”(54)

그들은 무기력했고, 무기력한 만큼 격렬하게 비분강개했다.”(61)

이것이,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한 죄인에게 임금이 할 수 있는 소리인가. 나는 귀를 의심했다. 나는 임금이 가여웠고, 임금이 무서웠다. 가여움과 무서움이 같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임금은 강한 신하의 힘으로 다른 강한 신하들을 죽여 왔다.”(64)

나는 그 한 문장이 임금을 향한, 그리고 이 세상 전체를 겨누는 칼이기를 바랐다. 그 한 문장에 세상이 베어지기를 바랐다.

 

…… 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 삼군수군통제사 신() () 올림”(66)

우수영에서 내 군사는 120명이었고, 내 전선은 12척이었다. 그것이 내가 그 위에 입각해야 할 사실이었다. 그것은 많거나 적은 것이 아니고 다만 사실일 뿐이었다.”(70)

내 적이 나와 나의 함대를 향해 창검과 총포를 겨누는 한 나는 내 적의 적이었다. 그것은 자명했다. 내 적에 의하여 자리매겨지는 나의 위치가 피할 수 없는 나의 자리였다.”(78)

어쩔 수 없는 일은 결국 어쩔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지는 어느 날, 내 몸이 적의 창검에 베어지더라도 나의 죽음은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79)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79)

임금의 사직은 끝없이 목숨을 요구하고 있었고 천하가 임금의 잠재적인 적이었다.”(80)

임금은 장수의 용맹이 필요했고 장수의 용맹이 두려웠다. 사직의 제단은 날마다 피에 젖었다.”(81)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적의 적으로서 죽는 내 죽음의 자리에서 내 무와 충이 소멸해 주기를 나는 바랐다.”(82)

지휘 체계가 무너지면 적은 삼백 척이 아니라, 다만 삼백 개의 한 척일 뿐이다.”(96)

내가 적을 죽이면 적은 백성을 죽였고 적이 나를 죽인다면 백성들은 더욱 죽어나갈 것이었는데, 그 백성들의 쌀을 뺏고 빼앗아 적과 내가 나누어 먹고 있었다. 나의 적은 백성의 적이었고, 나는 적의 적이었는데, 백성들의 곡식을 나와 나의 적이 먹고 있었다.”(117)

세상은 칼로써 막아낼 수 없고 칼로써 헤쳐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칼이 닿지 않고 화살이 미치지 못하는 저쪽에서, 세상은 뒤채이며 무너져갔고, 죽어서 돌아서는 자들 앞에서 칼은 속수무책이었다. 목숨을 벨 수는 있지만 죽음을 벨 수는 없었다.”(124)

죽을 때, 적들은 다들 각자 죽었을 것이다. …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들의 살아 있는 몸의 고통과 무서움은 각자의 몫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각자의 몫들은 똑 같은 고통과 똑 같은 무서움이었다 하더라도, 서로 소통될 수 없는 저마다의 몫이었을 것이다. … 죽이되, 죽음을 벨 수 있는 칼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의 연안은 이승의 바다였다.(134~135)

물에 맞서는 배의 저항은 물에 순응하기 위한 저항이다. 배는 생선과 같다. 배가 물을 거스르지만, 배는 물에 오래 맞설 수 없고, 물을 끝끝내 거절하지 못한다. 명량의 역류를 거슬러 나아갈 때도, 배를 띄워주는 것은 물이었고 배를 나아가게 하는 것도 물이었다. … 물속을 긁어서 밀쳐내야 나아갈 수 있지만, 물이 밀어주어야만 물을 따라 나아갈 수 있다. 싸움은 세상과 맞서는 몸의 일이다. 몸이 물에 포개져야만 나아가고 물러서고 돌아서고 펼치고 오므릴 수가 있고, 몸이 칼에 포개져야만 베고 찌를 수 있다. 배와 몸과 칼과 생선이 다르지 않다.”(156)

싸움은 싸움마다 개별적인 것이어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마다 그 싸움이 나에게는 모두 첫 번째 싸움이었다. … 닥쳐올 싸움은 지나간 모든 싸움과 전혀 다른 낯선 싸움이었다. 싸움은 싸울수록 경험되지 않았고, 지나간 모든 싸움은 닥쳐올 모든 싸움 앞에서 무효였다.”(167)

“- 나으리의 몸이 수군의 몸입니다.

 - 그렇지 않다, 수군의 몸이 나의 몸이다.”(171)

칼이 아베의 목을 지날 때 내 오른팔에 와 닿던 진동을 생각했다. 아베를 심문할 때 내 마음속에서 울어지지 않던 두 개의 울음이 동시에 울어졌다. 아베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울음과 아베를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울음이 서로 끌어안고 울었다.”(190)

위관의 질문은 답변을 미리 예비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아무것도 답변할 수 없었다. 위관은 집요했으나, 아무것도 묻고 있지 않았다.”(194)

그러므로 나를 살려준 것은 결국은 적이었다. 살아서, 나는 다시 나를 살려준 적 앞으로 나아갔다.”(194~195)

적과 임금이 동거하는 내 몸은 새벽이면 자주 식은땀을 흘렸다.”(195)

칼로 적을 겨눌 때, 칼은 칼날을 비켜선 모든 공간을 동시에 겨눈다. 칼은 겨누지 않은 곳을 겨누고, 겨누는 곳을 겨누지 않는다. 칼로 찰나를 겨눌 때 칼은 칼날에 닿지 않은, 닥쳐올 모든 찰나들을 겨눈다. 적 또한 그러하다. 공세 안에 수세가 살아 있지 않으면 죽는다. 그 반대도 또한 죽는다. ()와 공()은 찰나마다 명멸한다.”(202)

남해 바다에까지 들리는 임금의 울음은 울음과 울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칼을 예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임금은 끝끝내 혼자였고 임금만이 적으로 둘러싸인 사직의 장자(長子)였다.”(229)

임금의 언어와 임금의 울음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임금은 울음과 언어로써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언어와 울음이 임금의 권력이었고, 언어와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은 보이지 않았다. 임금의 전쟁과 나의 전쟁은 크게 달랐다. 임진년에 임금은 자주 울었고, 장려한 교서를 바다로 내려보냈으며 울음과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날은 번뜩였다. 임진년에는 갑옷을 벗을 날이 없었다. 그때 나는 임금의 언어와 울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231)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 끼니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232~233)

임금의 교서는 울음과도 같았다. 배고픈 장졸들을 모아놓고 임금의 교서를 읽어주던 날도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234)

나는 굶어 죽지 않았다. 나는 수군통제사였다. 나는 먹었다. 부황 든 부하들이 굶어 죽어가는 수영에서 나는 끼니때마다 먹었다.”(237)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두려웠다기보다는 죽어서 더 이상 이 무내용한 고통의 세상에 손댈 수 없게 되는 운명이 두려웠다. 죽음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그것은 결국 같은 말일 것이었다. …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 … 나는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바다에서, 삶은 늘 죽음을 거스르고 죽음을 가로지르는 방식만으로만 가능했다. 내어줄 것은 목숨뿐이었으므로 나는 목숨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죽음을 가로지를 때, 나는 죽어지기 전까지는 생각할 수 없었고 나는 늘 살아 있었다. 삶과 분리된 죽음은 죽음 그 자체만으로 각오되어지지 않았다.”(240)

적은 죽음을 가벼이 여겼고 삶을 가벼이 여겼다.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적은 죽일 수 있었고 삶을 가벼이 여기는 적도 죽일 수 있었다”(242)

나를 이동시키면서 이동하는 적을 조준하기는 더욱 어려웠으나, 모든 유효한 조준은 이동과 이동 사이에서만 이루어졌다. 내가 적을 조준하는 자리는 적이 나를 조준하는 표적이었다.”(243)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357)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387)

이순신의 죽음은 전투가 끝난 뒤에 알려졌다. 통곡이 바다를 덮었다. 이날 전쟁은 끝났다.”(423)

 


[현의 노래]

: 2004년 정월에 쓰여지고, 2010.7.25~9.25에 읽다.

 

고을들은 왕의 것도 아니고 나라의 것도 아니어서 뉘 땅이 된들 고을은 살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고을은 무너지지 않는다. ….. “(49)

고을마다 말이 다르고 산천과 비바람이 다르다고 들었다. 그러니 어찌 세상의 소리를 하나로 가지런히 할 수 있겠느냐. 고을마다 고을의 소리로 살아가게 하여라.”(75)

“ …… 소리는 본래 살아 있는 동안만의 소리이고, 들리는 동안만의 소리인 것이오. …… 살아 있는 동안의 이 덧없는 떨림이 어찌 능침을 평안케 하고 북두를 진정시킬 수가 있겠소. 소리가 고을마다 다르다 해도 쇠붙이가 고을들을 부수고 녹여서 가지런히 다듬어내는 세상에서 고을이 무너진 연후에 소리가 홀로 살아남아 세상의 허공을 울릴 수가 있을 것이겠소? 소리는 본래 소리마다 제가끔의 울림일 뿐이고 또 태어나는 순간 스스로 죽어 없어지는 것이어서, 쇠붙이가 소리를 죽일 수는 없을 것 아니겠소? 죽일 도리가 없을 것이고, 죽여질 리가 없지 않겠소?”(116)

“ – 쇠붙이는 주인이 따로 없다. 쇠붙이는 지닌 자의 것이다.”(143)

“ – 쇠는 날에서 완성되는 것이오. … 날은 한없이 얇아져서, 없음을 지향하는 것이오, 날은 빈 것이오. 그러나 없는 것이 아니라, 있음과 없음의 사이에서 가장 확실히 있는 것이오. 또 그 위태로운 선 위에서 한없이 단단해야 하는 것이오. 날은 쇠의 혼이라 할 수 있소.”(243)

“ – … 비어야 울리는구나. 소리란 본래 빈 것이다. 비어 있지만 없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있는 것이다.”(245)

 


[남한산성]

: 2007 4월에 쓰여지고, 2012.7.15~7.18에 읽다.

 

“ – 조정의 막중대사를 대장장이에게 맡기시렵니까?

  –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성이 위태로우니 충절에 귀천이 있겠느냐?

  – 먹고 살며 가두고 때리는 일에는 귀천이 있었소이다. “(227)

“ – 전하, 명길은 전하를 앞세우고 적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려는 자이옵니다. 죽음에도 아름다운 자리가 있을진대, 하필 적의 아가리 속이겠나이까?”(270~271)

“ – 전하, 살기 위해서는 가지 못할 길이 없고, 적의 아가리 속에도 삶의 길은 있을 것이옵니다. 적이 성을 깨뜨리기 전에 성단을 내려주소서.”(271)

“ – 영상의 말은 나무랄 데가 없구나.”(271)

“ – 두려움이 말을 가파르게 몰아가는 것이니 너무 나무라지 마소서.

 – 경을 베라고 하는구만.

 – 옳은 말이오나 지금은 아니옵니다. 지금은 이르옵니다. 환궁 후에 베소서.”(272)

“ – 너희는 내가 여기까지 온 것과 오지 않은 것의 차이를 깊이 생각해라. … 저들이 완강하고 편벽할수록 제 발로 걸어 나와야 황제의 존호는 빛날 것이다.”(277)

“ – 신들의 소견은 중요하지 않사옵니다. 전하께서 요리하신다면 어찌 길이 없겠나이까. 성지를 밝혀주소서.”(295)

“ – 말하라. 역적이 되기가 두려운가.”(295)

임금은 또 지는구나. 정랑이 이기는구나. 정랑이 임금을 이기고 묘당을 이기고 남한산성을 이기고 칸을 이기는구나. 매 맞은 정육품 수찬이 이기고, 죽은 정오품 교리가 이기고, 미치지 않은 정오품 정랑이 이기는구나…… .”(308~309)

“ – … 전하, 명길을 멀리 내치시고 근본에 기대어 살 길을 열어 나가소서.”(314)

“ – 상헌은 제 자신에게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 상헌이 말하는 근본은 태평한 세월의 것이옵니다. … 상헌은 과연 백이(伯夷)이오나, 신은 아직 무너지지 않은 초라한 세상에서 만고의 역적이 되고자 하옵니다. 전하의 성단으로, 신의 문서를 칸에게 보내주소서.”(314~315)

김류가 말했다.

 – 명길이 제 문서를 길이라 하는데 성 밖으로 나아가는 길이 어찌 글과 같을 수야 있겠나이까. 하지만 글을 밟고서 나아갈 수 있다면 글 또한 길이 아니겠나이까.

임금이 겨우 말했다.

영상의 말이 어렵구나. 쉬고 싶다, 다들 물러가라.

밤중에 임금이 승지를 불러서 문서에 국새를 찍었다.”(315)

“ – 봄에는 조정이 나가는 것이옵니까? 조정이 비켜줘야 소인들도 살 것이온데…… .”(319)

“ –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고,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하여 못할 짓이 없는 것이옵니다.”(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