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 [88만원 세대]를 읽고서 …

바람2010 2012. 2. 5. 01:05

[88만원 세대]우석훈.박권일,2007년8월1일,레디앙

사실 읽지 않으려고 했다. 나온 지도 좀 됐고, 워낙 많이 알려진 책이라 굳이 읽을 필요가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읽고야 말았다. 그러나, 역시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전해 듣는 것과 직접 읽는 것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책이 나오고 4년 반 정도가 흐른 지금 책의 내용을 다시 살피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책은 이른바 세대론에 입각해, 우리 사회의 20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20대의 삶을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0청춘 청년 미숙하지만 아름다운 시기 가슴 시리도록 그리운 시절 이렇게 추상화되고 미화되는 회고적 20가 아니라, 오늘 바로 여기 대한민국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존재로서의 20, ‘레알 20에 대한 이야기이다. 20대에 대한 작문-문학이 아니라, 사회학이고, 경제학이고, 정치학이다. 어쩌면 우리 나라에 최초로 등장한 본격적인 세대론이 아닌가 싶다. 다른 나라의 사례에 대해 이야기하고, 주요 개념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래서 길지만,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물이나 현상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계급론이 아니라 세대론으로 살펴 보는 까닭에 계급론적인 접근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드러난다. 무엇이 더 본질적이냐를 따지기 앞서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단면을 잘라봐야 하는 이유이다. 

 

첫 섹스의 경제학: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1장부터 시작해서 우리 사회의 10대와 20대가 처한 고통, 그 고통을 낳은 사회의 변화, 독점의 강화, 불공정한 세대 간 경쟁’, 기성 세대에 의한 다음 세대 착취, 승자독식, 개미지옥 등을 차분히, 풍부하게 설명한다. 20대의 고통은 개인이 무능한 탓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며, 따라서 기존 질서에 대한 순응과 개인 스펙 쌓기로 해결되지 않으며, 사회적 해결을 위해 저항해야 한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 낸다.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2007년에 출간된 이 책은 20대에 대한 세대론-세대 착취 비판일 뿐 아니라 노무현정권에 대한 비판보고서이고, ‘이명박정권에 대한 예언서이기도 하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던 노무현이 정작 집권 후에는 좌파 신자유주의 정권이 되어, 지지자를 배반하고 다수의 삶을 고통으로 몰아 넣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노무현 정권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켰다. 대학을 국립대 위주로 재편하고 대학 간 서열을 완화/폐지시켜, 학벌과 사교육 경쟁, 살인적인 등록금 부담을 없애는 문제나, 부동산 안정을 통한 주거비 부담 완화, 독점 완화, 중소기업 배려, 청년 일자리 창출, 고용 안정 등등 우리 사회 다수가 갈구하고 있는 것들을 정책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음에도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만들어진 정치적 결과가 이른바 ‘ABR(Anything But Roh)’ 아니던가? 노무현만 아니면 된다는 냉소가 만들어 낸 것이 성공 신화의 주인공’ MB의 집권이었다.

이후 상황은, 빨리 대처하지 않으면 더 극악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저자의 예언대로 되고야 말았다. 반노무현 정서 덕택에 집권했고, 정치적으로는 시종일관 반노무현의 길을 걸었던 MB정권은 그러나, 노무현 정권에 이어 우리 사회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김대중 정부 때 ‘8:2의 사회에서 노무현 정부 때는 ‘90% 10%’를 이야기 해야 하는 사회가 되었고, 이제 지금은 ‘99% 1%’를 이야기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세대 간 경쟁은 곧 세대 간 착취이다. 대다수가 안정적인 조건을 확보한 기성 세대와, 일부를 제외하면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새로운 세대 간의 경쟁은 당연히 힘 있는 기성 세대에 의한, 힘 없는 20대에 대한 착취가 되고 만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현재의 새로운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고, 현재 기성 세대의 자식들이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20대가 되었을 때, 더 가혹한 세대 간 경쟁과 착취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당연한 예측이 저주처럼 들린다. 기성 세대의 사다리 걷어차기에 대한 복수는 한 세대를 건너 자식 세대를 향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기성 세대가 될 20대는 은퇴한 현재의 기성 세대를 돌볼 능력이 부족할 것이고, 결국 현재의 기성세대가 현재의 새로운 세대-20대를 지원하고, 연대해 사회를 바꾸지 않는다면, 현재의 부조리에 눈 감는다면, 자신의 노후에 대한 사회적 보살핌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 책이 발간된 것은 노무현정권 마지막 해이고, 지금은 이명박정권의 마지막 해이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객관적인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20대의 삶도 더욱 고통스러워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대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제 정치에 무관심하지 않으며, ‘저항에 참여하고 있다. 촛불을 들고,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고, ‘대학 포기 선언을 하며, SNS라는 대안 매체를 활용하고, 적극적으로 투표놀이를 즐긴다. ‘유쾌-통쾌-상쾌-발랄한 저항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20대의 저항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이 책이 주장하듯 세대 간 연대가 필요하다. ‘세대 간 연대는 곧 계급적 단결이고, ‘99%의 단결이다. 저항이 필요한 것은 지배자와 지배자의 자식들이 아니라, ‘피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자식들이기 때문에. 이 책이 주장하는 기성 세대의 양보, 정규직의 양보, 노동조합의 양보는 지배자들에 대한 양보, 자본에 대한 양보가 아니다. 약자에 대한 배려이고, 동질성을 획득하고, 내적 단결을 고양하기 위한 마중물이다. 상대적으로 힘 있는 대기업/정규직/조직 노동자들의 양보 문제를 계급 간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계급 내 문제로도 봐야 한다. 둘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자본에 대한 양보로만 보는 것은 계급 의식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자기 것에 대한 본능적 집착의 발로일 뿐이다. 단결을, 저항을, 변화를 원한다면 실제로 그것이 가능하게 될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약자에게 강자가 되라’, ‘스스로 싸워 쟁취하라는 훈계가 아니라 엄호와 지원이 필요하다.

 

나도 기성 세대인 까닭에 20대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도 기성 세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이리라. 20대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