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여행

바람의 이탈리아 여행: 폼페이 – 너무나 아쉬운(24.06.30.)

바람2010 2024. 8. 4. 23:28

어쩌다 가게 된 밀라노 출장, 간 김에 한 이탈리아 여행.

노동자와 자동차의 도시 토리노에서 이틀.

자유여행을 준비할 여유가 없고, 이탈리아는 이동이 많아서 이후 일정은 패키지 합류.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을 함께 여행한 행복함과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 기록을 남긴다.

잊지 않고 두고두고 흐뭇해하기 위해.

 

이 날은 여러 모로 이번 이탈리아 여행 중 가장 아쉬운 날이었다. 무엇보다 폼페이 유적을 보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폼페이 유적에서 추천하는 탐방 경로는 네 가지, 그중 가장 긴 일정은 7시간, 가장 짧은 일정도 2시간인데, 겨우 한 시간 봤다. 9시부터 개장인데, 10시 넘어 들어가서 대표적인 유적들도 제대로 못 보고 11시쯤 나왔다.

초보산행님의 서유럽 5개국 810일 여행기- 7일차(2018.10.23..), 그때 그날에 멈춰버린 도시 '폼페이(Pompei)'

이 분도 패키지로 왔고, 로마 근교 호텔에서 7:30 출발, 10시에 폼페이 도착, 폼페이 관광 후 점심, 소렌토로 이동, 관광 후 카프리 섬 관광, 나폴리로 이동. 내가 참가했던 패키지와 같은 동선인데, 사실 다른 패키지들도 마찬가지인데, 왜 우리만 유독 폼페이 관광이 부실했을까? 뭐가 문제였을까?

아쉬워야 다음에 또 온다?’ ‘아쉬우면 다시 오면 된다?’ 글쎄, 한번 갔던 곳을 다시 가는 게 쉬울까? 여행만 다니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가 볼만한 곳이 얼마나 많은데. 한번 여행 와서 다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기회 있을 때 많이 보고 느끼려고 노력해야 뭔가 알게 되고, 여러 곳을 여행하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폼페이 Pompeii 유적

번영하던 로마제국의 도시 폼페이는 서기 79824일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도시 전체와 약 2만 명의 주민이 함께 화산재에 파묻힌 비운의 도시이다. 당시 폼페이는 로마제국의 어떤 도시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위락시설로 로마 귀족들 사이에서 인기 높은 휴양 도시였고 농업, 상업도 발달해 있었다. 그러나 화산재에 묻힌 후 폼페이는 사람들의 기억과 역사에서 사라져 있었다.

이 도시는 1616세기말에 재발견되었지만 1748년 나폴리 왕 찰스 3세에 이르러서야 탐사가 시작되었고, 발굴 작업은 아직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과 유물들로 당시의 폼페이 사람들의 문화와 예술, 건축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폼페이가 로마제국으로 편입되었을 때 로마인들은 폼페이의 특성에 맞게 개조했다. 자갈로 포장된 도로에 하수로가 있었기 때문에 보행자 도로를 조금 높게 올렸고, 포럼과 원형극장에는 보행자들을 위한 특별 구역을 지정해 교통소통을 원활하게 통제했다. 그리고 폼페이는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9개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폼페이 시로 들어가는 관문 근처에는 여관과 마구간, 병원이 이었고, 시내 중심 거리에는 음식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https://pompeiisites.org/en/visiting-info/map-and-guide-to-the-excavations/

 

Map and Guide to the Excavations - Pompeii S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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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mpeiisites.org

 

폼페이 유적 탐방 시작

 

교외 목욕탕 Suburban Baths

 마리나 게이트 바로 아래에 위치한 교외 목욕탕 Suburban Baths은 기원전 1세기에 방어 기능을 상실한 벽을 따라 중간에 지어졌으며, 스타비안 목욕탕이나 포럼의 목욕탕과 달리 교외 목욕탕은 개인 목욕탕이었다.

탈의실에는 위층 복도에서 매춘을 목적으로 한 활동을 광고하는 작은 에로틱한 그림이 있는데, 아마도 목욕탕에서 불법적으로 자주 일어났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온천 구역은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작은 차가운 웅덩이에는 가짜 동굴에서 폭포가 흐르고 큐피드가 마르스에 무기를 넘겨주는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으며 벽에는 해전과 해양 야생 동물을 재현한 그림이 프레스코 화로 그려져 있다.

온화한 객실부터 가장 뜨거운 객실까지 일반적인 객실 순서 외에도 바닥에 대형 청동화로로 난방을 하는 대형 수영장도 마련되어 있다.”

 

폼페이 유적지 입구. 교외 목욕탕  Suburban Baths.
교외 목욕탕  Suburban Baths. 위쪽에 포르타 마리나 Porta Marina - ‘해변의 문’이 보인다.

 

포르타 마리나 Porta Marina - ‘해변의 문

포르타 마리나는 해변의 문이라는 뜻으로 폼페이 탐방이 시작되는 곳이다. 폼페이는 본래 해안절벽에 형성된 마을이었다. 화산폭발로 베수비오화산 반산 30km까지 화산재로 묻히고 육지가 바다 쪽으로 1.2km나 늘어나면서 바다에서 떨어진 곳이 되었다.”

폼페이로 들어가는 성문은 큰 문과 작은 문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말과 짐승의 통행을 위해 더 높은 곳에 있는 큰 문이고, 다른 하나는 보행자의 통행을 위해 더 앞쪽에 있는 작은 문이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성벽은 기원전 6세기에 이미 완성된 것으로 길이가 3200m가 넘으며, 내부가 제방으로 보호되는 이중 성벽과 통로로 구성되어 있다.

포르타 마리나 Porta Marina - ‘해변의 문’. 왼쪽은 보행자들이 다니던 작은 문, 오른쪽은 말과 마차, 짐승이 다니던 큰 문. 지금은 큰 문으로 사람들이 다닌다.
포르타 마리나 Porta Marina - ‘해변의 문’. 동굴을 지나듯 통로를 지나면
긴 성벽이 나타난다.

 

포르타 마리나를 나와서 조금 직진하면 좌우에 있는 아폴로 신전 Santuario di Apollo과 바실리카 Basilica도 안 보고 포로 로마노로 바로 갔다. 지금 생각해도 완전 날림이었다.

 

포로 로마노 Foro Romano

로마만이 아니라 로마시대 계획도시에는 반드시 포로 로마노가 있었다. 전쟁을 위해 병사를 모집하거나 대표를 선출하는 투표장, 시장, 신전, 목욕탕 등 도시의 주요 시설들이 이 포로 로마노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시민 포럼은 도시의 일상생활의 핵심이며 도시 행정 및 사법, 비즈니스 관리, 시장과 같은 무역 활동을 위한 모든 주요 공공건물의 중심지이자 시민 예배의 주요 장소이다.

포럼의 광장은 원래 점토로 만들어진 전체적으로 규칙적인 모양의 단순한 광장처럼 보였고 서쪽은 아폴로 신전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동쪽에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포럼은 기원전 3세기에서 2세기 사이에 광장의 모양이 규칙화되고 현관으로 둘러싸여 바닥이 응회암 석판으로 포장되면서 크게 수정되었다.”

 

포로 로마노 Foro Romano

 

포로 로마노 Foro Romano

 

포로 로마노 Foro Romano. 멀리 베수비오 화산이 보인다.
포로 로마노 Foro Romano에서

 

다음 사진은 폼페이 포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켄타우로스 Centaur 청동상. 그러나 유적이 아니라 이고르 미토라이 Igor Mitoraj2017년 작품이다. 피사에서 봤던 "Angelo Caduto 추락한 천사"(2012)를 만든 그 폴란드 조각가이다.

폼페이 포로에 있는 켄타우로스 Centaur 청동상. 이고르 미토라이 Igor Mitoraj의 2017년 작품

 

주피터 신전 Tempio di Giove

주피터 신전은 포럼의 북쪽을 지배하고 있으며, 그 뒤로는 베수비오 산이 아름답게 솟아 있다. 식민지가 세워졌을 때(기원전 80) 이 신전은 급격한 개보수를 거쳐 로마 카피톨리움의 조각상처럼 생긴 주피터, 주노, 미네르바의 세 숭배상이 포럼 광장을 지나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높은 기단 위에 놓인 진정한 카피톨리움으로 거듭났다..

주피터 신전 Tempio di Giove

 

 

시장 Macellum 

본래 이 건물은 황제 숭배를 위한 장소로 기원전 130-120년 사이에 지어졌다. 다른 건 다 생략하고 (직물가게 벽에 그려진) 벽화와 사람 모습의 석고본만 봤다. 벽화는 당시 폼페이 사람들의 일상과 신화의 내용을 담고 있다. 석고본은 화산폭발 후 시신은 썩어 사라졌지만, 화산재가 그대로 굳어지면서 생겨난 공간에 고고학자들이 석고를 부어 굳힌 후 주변 화산재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 낸 것들이다.

시장 Macellum
폼페이 사람들의 일상과 신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 벽화

 

폼페이 사람들의 일상과 신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 벽화
폼페이 사람들의 일상과 신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 벽화
폼페이 사람들의 일상과 신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 벽화
폼페이 사람들의 일상과 신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 벽화
화산폭발로 죽은 사람들을 재현한 석고본
화산폭발로 죽은 사람들을 재현한 석고본
화산폭발로 죽은 사람들을 재현한 석고본
시장 Macellum의 안뜰

 

따뜻한 음식을 파는 작은 음식점 Thermopolium

Thermopolium뜨거운을 뜻하는 그리스어 thermos판다는 뜻의 Poleo가 합쳐진 것으로, 음료와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는 곳을 말한다.

폼페이에서 발굴된 부분(옛 도시 지역의 3분의 2에 해당)에는 뜨거운 음식을 판매하던 작은 요리점인 테르모폴리움이 89개나 있다. 부자들이 아니라 하층 계급이 그러한 장소를 자주 방문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주요 길목에 위치해 있었고, 로마시대 가장 서민적인 장소였으며, 이곳에서 팔던 음식 또한 당시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었다.

폼페이를 지나가다 보면 거리를 내려다보는 큰 집들 안에 많은 주거지와 상점을 볼 수 있는데, 대부분 방 한 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인과 상인들이 이곳에 살면서 일했고, 종종 위층에서 가족과 함께 살기도 했다. 이 집들에는 부엌이 거의 없다. 따라서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는 많은 테르모폴리움 중 한 곳에서 외식을 하곤 했다.

 

 

빵집 Panificio di Popidio Prisco

폼페이 빵집에서는 제분과 제빵이 모두 이루어졌다.

밀은 커다란 용암 맷돌로 갈아지는데, 맷돌은 아래쪽 원뿔 모양의 부분(메타 meta)과 모래시계 모양의 위쪽 부분(카틸러스 catillus)의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카틸러스에 곡물을 붓고 노예나 동물이 손잡이를 당겨서 카틸러스를 회전시키면 곡물이 갈려서 아래로 떨어진다.

빵은 건물 중앙의 큰 오븐에서 다양한 모양으로 구워졌으며 계산대가 있는 작은 방에서 정기적으로 같은 장소에서 판매되었다. 이 빵집에는 계산대가 없었는데, 아마도 빵을 직접 생산하거나 위탁 생산하고, 도매로 판매하거나 리바니 libani라고 불리는 노점상들이 판매했을 것이다.

폼페이에는 약 36개의 빵집이 있다.

왼쪽에 화덕, 중앙에 맷돌.

 

 

포로 목욕탕 Terme del Foro

지중해 전역에 분포된 수많은 로마시대 목욕탕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목욕탕이라고. 하루 일과가 오후 2시면 끝나는(진심 부럽다 ^/^) 로마시대 사람들은 목욕탕에서 하루를 마감했다고 한다. 목욕탕은 목욕만 하는 시설이 아니라 휴식과 체력단련, 사교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폼페이에는 공중목욕탕이 다섯 군데 있는데, 포로 목욕탕은 주피터 신전 뒤에 있다. 전형적인 목욕탕은 탈의실, 냉탕, 온탕, 열탕 순으로 구성되어 있고, 폼페이의 모든 공중목욕탕은 남성 구역과 여성 구역이 구분되어 있다.

욕실의 옷과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틈새는 테라코타로 된 남성 인물로 장식되어 있고, 탈의실과 온탕에는 정교한 벽토로 장식된 금고가 있는 등 방의 장식에 상당한 관심과 노력이 기울어졌다..

같은 방에서 난방에 사용되었던 커다란 청동화로를 발견할 수 있다. 더 작은 여성 구역은 분화 당시 개조 중이었다. 남자 숙소 입구에서 발견된 500개 이상의 램프는 저녁 개장 기간 동안 조명으로 사용되었다.

 

포로 목욕탕 Terme del Foro 입구
포로 목욕탕 Terme del Foro

 

목욕탕 입구에 있는 회랑으로 된 '운동시설(palaestra)’

 

자연광이 내부를 밝혀 준다.
남성 조각 사이가 옷과 물건을 보관하는 곳
아치형 천장에 홈을 파서 천장이나 벽에 맺힌 물방울이 바로 떨어지지 않고 벽을 따라 흘러내리도록 했다.
대형 냉수 대야
자연광이 내부를 밝혀 준다.
벽도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남성 조각 사이가 옷과 물건을 보관하는 곳

 

세상을 떠받치는 고통스러운 표정
미끄럼 방지를 위해서 작은 돌로 처리해 놓은 욕실 바닥

 

검투사 양성소 Caserma dei Gladiatori

본래 체력단련장으로 지어졌으나 서기 58년 네로황제가 본격적으로 검투사 경기를 활성화시키면서 검투사 양성소로 용도가 바뀌었다. 로마시대부터 휴양지로 각광받던 이탈리아 남부는 로마귀족들을 위해 검투경기가 활성화되어 검투사 양성소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검투사 양성소  Caserma dei Gladiatori
검투사 양성소  Caserma dei Gladiatori
검투사 양성소  Caserma dei Gladiatori

 

폼페이의 도로

폼페이를 사라지게 한 베수비오 화산을 향해 뻗어 있는 길
징검다리 모양의 보행자 건널목. 비나 오물에 발을 더럽히지 않고 건널 수 있다. 중간 중간 보이는 흰 돌은 야간 통행을 위한 반사석이라고.

 

마차 바퀴 자국?

 

집창촌을 알리기 위해 도로에 남근 모양을 새겼다. 폼페이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 야화가 그려져 있다는 집창촌에 가 보지는 못했다.

집창촌을 알리기 위해 도로에 남근 모양을 새겼다
음수 저장 시설?

 

폼페이 유적지를 나오면서 너무 아쉬워 뒤돌아보니 멀리 비너스 신전에 있는 다이달로스 Daedalus 청동상이 보인다. 이 역시 이고르 미토라이 Igor Mitoraj의 작품(2010)이다.

비너스 신전에 있는 대달로스 Daedalus 청동상, 이고르 미토라이 Igor Mitoraj, 2010

 

주요 참고 자료

웹 검색

염승범박소미황창근김은성. 2019. [유럽여행 백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