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여행

바람의 이탈리아 여행: 로마 – 이제 '로마의 휴일'은 잊자(24.06.29.)

바람2010 2024. 8. 2. 22:47

어쩌다 가게 된 밀라노 출장, 간 김에 한 이탈리아 여행.

노동자와 자동차의 도시 토리노에서 이틀.

자유여행을 준비할 여유가 없고, 이탈리아는 이동이 많아서 이후 일정은 패키지 합류.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을 함께 여행한 행복함과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 기록을 남긴다.

잊지 않고 두고두고 흐뭇해하기 위해.

 

패키지여행이라 어쩔 수 없긴 했지만, 로마는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일정 중 하나였다. 겨우 몇 시간, 대표적인 장소를 옮겨 다니며 사진 찍기. 내부 입장은 단 한 곳뿐.

여전히 영화 로마의 휴일이 방문지 선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53년 작이니 70년도 더 된 영화인데.

승합차로 이동해 이동 시간은 다소 줄었지만, 로마 거리를 걸으면서 볼 수 있는 것들은 볼 수 없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한 주 정도 로마에서만 머물면서 로마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

 

성 천사의 성 (산탄젤로 성) Castello Sant’Angelo

"590년 교황 그레고리우스가 로마에 창궐한 흑사병을 없애기 위해 기도행렬을 하던 중 테베레강 건너편 하드리아누스 Hadrianus 황제의 무덤 터 꼭대기에서 천사 미카엘이 칼집에 칼을 꽂는 환영을 보게 된다. 그 뒤 거짓말처럼 흑사병이 사라졌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성 위에 천사 미카엘의 상을 세우면서 천사의 성이라 부르게 된다. 원래는 원통 모양의 성만 있었는데 후에 바티칸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면서 이곳을 교황의 피신처로 사용하고자 성 주변에 성벽을 둘러쌌다. 이 성벽은 미켈란젤로가 건축가로서 만든 첫 번째 작품이다.

천사의 성 앞에 놓은 성 천사의 다리’(Ponte Saint'Angelo)17세기 베르니니 공방에서 제작한 것으로 조각마다 예수와 관련된 각각의 성물을 들고 있는 천사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성 천사의 성’ Castello Sant’Angelo과 ‘성 천사의 다리’ Ponte Saint'Angelo. 왼쪽은 성 베드로 동상, 오른쪽은 사도 바울 동상
‘성 천사의 성’ Castello Sant’Angelo과 ‘성 천사의 다리’ Ponte Saint'Angelo.

 

판테온 Pantheon

로마 시내에서 현재까지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로마시대 건축물은 콜로세오와 판테온 2개뿐이다. ‘모든 신들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판테온은 기원전 27년 로마 장군 아그리파가 만든 신전이다. 판테온은 모든 로마 시민들이 함께 하는 공간이므로 다른 신전과 달리 신을 조각한 석상을 두지 않았다. 이것이 이 위대한 건축물을 오늘날까지 세상에 남게 한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로마제국 멸망 이후 기독교 세력은 약 200년 동안 로마제국시대의 건축물을 종교적인 이유로 파괴하였다. 판테온 또한 신전이었지만 기독교 세력은 신의 석상이 없었으므로 이 건축물을 성당으로 개조하였고, 지금도 매주 일요일에는 미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름 43.4m의 판테온 돔형 지붕은 천 년이 지나서도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천사들의 작품이라 극찬했을 만큼 시공을 초월한 건축물이었다. 판테온을 뛰어넘는 돔 형태의 건축물인 피렌체 두오모가 만들어지기까지 천 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판테온의 창문이라 불리는 오쿨루스 Oculus (돔 가운데 구멍)는 이를 통해 들어본 빛이 판테온 실내를 더욱 경이롭고 웅장하게 보이게 한다. 로마건축의 위대함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실내에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 아들 움베르토 1세와 그의 아내 그리로 라파엘로의 무덤이 있다.”

 

판테온 Pantheon
판테온 Pantheon 앞에서

 

판테온 Pantheon 입구

 

돌을 깔아 만든 전형적인 로마의 길

 

 

시내 관광용으로 쓰이는 전기차인 것 같다.

 

트레비 분수 Fontana di Trevi

르네상스시대 로마를 새롭게 꾸미는 과정에서 로마제국 시대에 세워졌지만 파손된 수로를 새롭게 복원하여 수많은 분수를 세우게 된다. 물의 도시로 거듭나게 된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분수가 트레비 분수이다.

트레비 분수는 1732~1762년에 만들어졌으며, 분수의 배경은 나폴리 궁전의 벽면을 이용한 조각으로 채워져 있다. 분수 중앙에는 바다의 신 넵투누스, 좌우에는 풍요와 건강을 상징하는 여신상 그리고 앞에는 사나운 바다와 평화로운 바다, 양면성을 보여주는 말과 반인반어였던 아들 트리톤의 조각상이 있다. 바로크 양식의 걸작품으로, 분수 중앙에 있는 해마가 끌어올린 커다란 조개 위의 냅튠과 트리톤의 대리석 조각들은 브라치의 작품이다.

트레비 분수의 원천은 처녀 수로 Aqvam Virginem인데, 이 수로는 아우구스투스의 오른팔이었던 마르쿠스 아그리파 Marcus Vipsanius Agrippa가 더위에 지친 로마병사들을 위해 샘을 찾던 중 한 처녀가 알려준 곳을 팠더니 물이 나왔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트레비 분수가 이만큼 유명해진 것은 역사적인 배경 외에도 동전 던지기가 있다. 분수에 동전을 한 개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게 되고, 두 개를 던지면 사랑이 이뤄지고, 세 개를 던지면 새로운 사랑을 찾을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나는 동전을 던지지 않았다. 소원이 이루어질까봐.

트레비 분수는 큰 역사적 의미는 없지만, 정말 아름답긴 하다.

트레비 분수 Fontana di Trevi. 아름답다.

 

 

트레비 분수 Fontana di Trevi. 아름답다.

 

트레비 분수 Fontana di Trevi. 아름답다.
트레비 분수 Fontana di Trevi를 배경으로 남이 찍어 준 사진

 

스페인 광장 Piazza di Spagna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

아니 로마에 웬 스페인 광장? 17세기 스페인 영사관이 있던 지역이라 스페인 광장 Piazza di Spagna이라 이름 붙였단다. 참 신기한 작명법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스페인 계단에서 젤라토를 먹던 장면이 스페인광장을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로 만들었다. 굳이 우리가 거기 간 이유이다.

계단 뒤편에는 15세기 프랑스인이 지은 삼위일체성당 Chiesa della Trinita dei Monti이 있으며, 이 건물은 현재도 프랑스 소유라고. 참 신기한 구역이다.

광장 가운데에는 잔로렌조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니니가 만든 조각배 모양의 대리석 분수 바르카차 Barcaccia (조각배 분수)가 있다.

 

스페인 계단에서. 계단 위 삼위일체성당 Chiesa della Trinita dei Monti의 종탑 및 오벨리스크가 보인다.

 

조각배 모양의 대리석 분수 바르카차 Barcaccia (조각배 분수)

 

무척 더운 여름이라 사람들이 분수 앞에서 더 신난 것 같다.

 

원죄 없이 잉태한 성모의 기둥 La Colonna della Immacolata Concezione

스페인 광장 남동쪽에 있는 미냐넬리 광장 Piazza Mignanelli에 위치해 있는 원죄 없는 잉태의 기둥은 축복받은 동정녀 마리아 Blessed Virgin Mary를 묘사한 19세기 기념물로, 1854년에 채택된 원죄 없는 잉태 교리’ Immaculate Conception를 기념하여 1857128일에 헌정되었다.

 맨 위에는 주세페 오비치 Giuseppe Obici의 작품인 성모 마리아 Virgin Mary의 청동상이 있고, 아래 받침대에는 처녀 출산 virgin birth을 예고하는 히브리인 상 4개가 있다: 족장 모세 Patriarch Moses(Ignazio Jacometti ), 선지자 이사야 Isaiah the Prophet(살바토레 레벨리 Salvatore Revelli ), 다윗왕 King David(다모 타돌리니 Adamo Tadolini ), 선견자 에스겔 Ezekiel the Seer(카를로 첼리 Carlo Chelli )의 동상이 있다. 대리석 받침대에는 수태고지, 성 요셉의 꿈, 성모 마리아의 대관식, 교리의 선포를 떠올리게 하는 4개의 옅은 부조가 새겨져 있다.

코린트 식 기둥 자체는 고대 로마에서 조각되었으며, 1777917일 캄포 마르치오 Campo Marzio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라 콘체치오 네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건설하는 동안 발견되었다.

원죄 없이 잉태한 성모의 기둥. 왼쪽 족장 모세 Patriarch Moses, 가운데 다윗왕 King David, 오른쪽 선지자 이사야 Isaiah the Prophet. 맨 위는 당연히 동정녀 마리아 Virgin Mary

 

원죄 없이 잉태한 성모의 기둥. 왼쪽 선견자 에스겔 Ezekiel the Seer, 오른쪽 족장 모세 Patriarch Moses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

베네치아 광장 중앙을 장식하고 있는 흰색 건물은 1870년 이탈리아를 통일한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다. 건물 가운데에는 로마제국 멸망 후 1000년 넘게 분열되어 있던 이탈리아를 통일한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의 청동상이 있고, 제단 내부에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이 건축물은 1885년 주세페 사코니가 설계하고 1911년에 개관되었는데, 거대한 규모로 지어지면서 캄피돌리오 북쪽 언덕을 막아버렸고, 당시에 사용하지 않았던 이질적인 하얀 대리석과 디자인으로 도시 미관을 해치는 것을 비꼬아 '웨딩케이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사진 오른쪽 건물이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 세 기념관

 

인술라 델아라 코엘리 Insula dell'Ara Coeli

인술라 델 아라 코엘리는 고대 로마 시민들이 거주하던 주거 공간으로 2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인슐라는 서민들이 살던 다층 공동주택으로 이 건물은 안뜰에 모여 있던 4층 건물의 일부분일 것이라 추측된다. 사진에 보이는 프레스코화는 11세기 성당의 전면부의 일부분으로 그리스도의 매장을 묘사하고 있으며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이 양쪽에 자리하고 있다고.

인술라 델 아라 코엘리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 바로 옆에 있다.

고대 로마 서민들이 살던 다층 공동주택 인술라 델아라 코엘리 Insula dell'Ara Coeli
고대 로마 서민들이 살던 다층 공동주택 인술라 델아라 코엘리 Insula dell'Ara Coeli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과 인술라 델아라 코엘리에 인접해 산타 마리아 인 아라 코엘리 대성당 Basilica di Santa Maria in Ara coeli이 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캄피돌리오 광장이 있다.

산타 마리아 인 아라 코엘리 대성당  Basilica di Santa Maria in Ara coeli.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 세 기념관과 인술라 델아라 코엘리에 인접해 있다.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 산타 마리아 인 아라 코엘리 대성당, 캄카피톨리노 언덕을 오르는 코르도나타 계단

 

캄피돌리오 광장과 카피톨리니 박물관 Piazza del Campidoglio & Museo Capitolini

카피톨리노 언덕 Mons Capitolino은 로마의 역사가 시작된 7개 언덕 중 하나로, 정치와 종교적으로 로마인들에게 중요한 곳이다. 지금의 Capital 수도의 어원이 되기도 한 이 언덕에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돌리오 광장 Piazza del Campidoglio이 있다.

카피톨리노 언덕을 오르는 코르도나타 Cordonata 돌계단은 착시효과를 이용해 만든 계단으로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 일반적으로 높은 계단을 밑에서 올려다보면 좌우의 폭이 좁아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계단은 미켈란젤로가 밑에서 위로 갈수록 계단의 좌우 폭을 넓게 만들어 밑에서 올려다봐도 일자로 보이게, 그래서 계단이 짧아 보이게 설계해 유명해졌다.” , 과연 좋은 설계일까? 반대로 내려다보면 더 급격하게 계단의 좌우 폭이 좁아지고, 계단이 길어 보일 텐데??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코르도나타 Cordonata 돌계단. 밑에서 위로 갈수록 계단의 좌우 폭을 넓게 만들어 밑에서 올려다봐도 일자로 보이게, 그래서 계단이 짧아 보이게 설계했다고.

 

계단 끝에는 포로 로마노에서 옮겨 온 쌍둥이 형제 카스토르 Castor와 폴룩스 Pollux의 조각상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이들의 어머니는 레다 Leda로 같지만, 카스토르 Castor의 아버지는 스파르타 왕 틴다레우스 Tyndareus이고, 폴룩스 Pollux의 아버지는 백조를 가장하여 레다를 유혹한 천하의 난봉꾼 제우스이다. 각기 다른 아버지로부터의 동시 임신(異父同時複姙娠, heteropaternal superfecundation)한 사례. 사실 그리스 신화에 비하면 요즘 ‘막장 드라마’는 막장도 아니다.

포로 로마노에서 옮겨 온 쌍둥이 형제 카스토르 Castor와 폴룩스 Pollux의 조각상. 어머니는 같으나 아버지가 다른 쌍둥이 형제. 중앙에 보이는 건물은 세나토리오 궁전  Palazzo Senatorio

 

광장 정면에 있는 건물은 세나토리오 궁전 Palazzo Senatorio. 1143년 이후에 원로원 청사로 사용했으며, 현재는 시장집무실과 시의회로 사용 중이라고.

세나토리오 궁전 Palazzo Senatorio. 앞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 Antoninus의 청동상이 있다.

 

세나토리오 궁전 Palazzo Senatorio , 광장 가운데에는 로마 제16대 황제이며, 5현제(賢帝)의 마지막 황제이고, ‘명상록’을 쓴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 Antoninus(AD 121-180년)의 청동상이 우뚝 서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 Marcus Aurelius Antoninus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최초로 대중에게 공개된 카피톨리니 박물관 Museo Capitolini은 캄피돌리오 광장의 콘세르바토리 궁전 Palazzo dei Conservatori과 누오보 궁전 Palazzo Nuovo을 합쳐서 만들었다. 두 건물은 지하 통로로 이어져있으며, 1471년 교황 식스투스 4세가 전리품이나 청동조각상을 시에 기부하면서 세워졌다. 그때부터 18세기까지 수집된 예술작품들이 이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으로 특히 고대 로마시대의 조각품이 주를 이룬다.”

세나토리오 궁전 Palazzo Senatorio 오른쪽에 있는 누오보 궁전 Palazzo Nuovo
누오보 궁전 Palazzo Nuovo. 콘세르바토리 궁전 Palazzo dei Conservatori과 함께 카피톨리니 박물관 Museo Capitolini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나토리오 궁전 Palazzo Senatorio 왼쪽에 있는 콘세르바토리 궁전 Palazzo dei Conservatori

 

 

세나토리오 궁전과 콘세르바토리 궁전 사이로 나가면 포로 로마노 유적지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포로 로마노 Foro Romano

로마의 심장이라 불리는 포로 로마노 Foro Romano는 곧 로마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 Romulus에 의해 로마인들은 현재의 7언덕에 처음 정착했다. 포로 로마노는 그들이 함께 모여 상거래와 회의를 하던 공간으로 사회시설들이 건설되면서 로마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포로"는 공공 광장이라는 의미이며, "포럼"의 어원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로마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제정시대 이후에는 황제를 위한 기념비와 신전이 세워지면서 황제를 위한 공간처럼 바뀌게 된다.

이곳은 상업, 정치, 종교 등의 시민생활에 필요한 기관의 모든 것들이 밀집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중심이 되는 곳을 제외한 많은 건물들이 283년에 대화재로 소실되었다. 서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버려지고 테베레강 Flume Tevere의 범람으로 토사에 묻혔다가 르네상스 시대에는 새롭게 로마를 재건하면서 채석장으로 전락했다. 뿐만 아니라 1933년 베니토 무솔리니 Benito Mussolini가 에티오피아 점령을 기념하는 개선식 행사를 위해 콜로세오에서 베네치아 광장으로 이어지는 일직선 도로를 건설하면서 콜로세오와 베네치아 광장 사이에 위치한 포로 로마노는 반으로 갈라졌다.

이처럼 수많은 아픔을 겪은 로마노지만 현재 바실리카 에밀리아 Basilica Aemilia와 시저 신전 Temple of Caesar, 원로원 Curia, 개선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치 등 다양한 유적들이 남아있다.

전망대에서 본 포로 로마노 Foro Romano

 

전망대에서 포로 로마노 Foro Romano를 배경으로

 

산타 마리아 델라 콘솔라치오네 알 포로 로마노 교회 Chiesa di Santa Maria della Consolazione al Foro Romano

위로의 성모 마리아 교회. 이 교회는 로마 포럼 근처 리오네 캄피텔리에 있으며 루페 타르페아 기슭에 있다. 1385년 사형 선고를 받은 귀족인 조르다넬로 델리 알베리니 Giordanello degli Alberini가 사형수들의 마지막 순간을 '위로'하기 위해 성모 마리아 형상을 이곳에 두도록 유언으로 금화 두 개를 남긴 것에서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1470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1583년에서 1606년 사이에 마르티노 롱기 장로 Martino Longhi il Vecchio의 설계에 따라 재건되었다. 정면 위쪽에 있는 것은 이사야, 스가랴, 에스겔, 예레미야 네 선지자의 동상이다. 지나가면서 사진만 찍었다.

산타 마리아 델라 콘솔라치오네 알 포로 로마노 교회 Chiesa di Santa Maria della Consolazione al Foro Romano 위로의 성모 마리아 교회

 

진실의 입과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 Bocca della Verita & Basilica di Santa Maria in Cosmedin

“발렌타인데이의 유래가 된 발렌티노 성인 San Valentino의 유골이 모셔진 성당이다. 3세기경 로마에서 활동했던 사제이자 의사 발렌티노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을 때 한 관리의 눈먼 양녀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을 보인다. 이로 인해 관리의 가족 모두가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이에 화가 난 황제의 명으로 성인은 처형당한다. 성 발렌티노 축일(214)이 연인들의 기념일이 된 것은 14세기경 연인들이 이날 축하카드를 주고받는 풍습이 성행하면서부터이다."

더 대중적으로 알려진, 그리고 대중들이 더 좋아할 발렌타인데이의 기원은 원정을 떠나는 병사의 결혼을 금지한 로마 황제의 명을 거역하고 발렌타인 신부가 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결혼을 몰래 허락하고 주례를 섰다가 사형을 당한 270년 2월 14일을 기념한다는 것이다.

성당 한쪽 벽면을 장식한 진실의 입은 원래 로마시대 가축시장 하수도 뚜껑이었다고 한다. 지름 1.5m, 무게 1,300kg에 이르는 이 거대한 얼굴의 주인은 강의 신 홀르비오, 바다의 신 오케아누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 트리톤이라는 여러 설이 있다.

"중세시대부터 사람들을 심문할 때 구멍 안에 손을 넣게 하고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손이 잘려도 좋다고 서약한 데서 진실의 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실제로 구멍 뒤편에서 집행관이 진실을 말하는 자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정치범의 경우 도끼로 손을 자르기도 했다.”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 '로마의 휴일 Roman Holiday, 1953'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와서 사진 찍는 명소가 되었다이날 로마 일정 중에 유일하게 실내로 입장했다. 다들 진실의 입에서 시험대에 오르느라.

안내문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진실의 입' 앞에서 대기중

 

 

나도 '진실의 입'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었다.

손을 넣었는데, 머리가 사라졌다는. 이제 아스라엘 백작처럼 머리를 들고 다녀야.
나만큼이라 '진실의 입'도 놀란 듯
일행들이 보고 즐거워함. 그럼 됐지. ^/^

 

이제 '진실의 입'이 우스워 보이더라.

 

성당 안으로 입장.

다음 사진 아랫부분은 성 발렌티노 San Valentino의 유골이라고.

성당 안에 모신 성 발렌티노 San Valentino의 유골

 

이 성당은 이탈리아에서 본 다른 성당들과 달리 화려하지 않다.

기도제단. 심자가 위의 INRI는 라틴어로 ‘유대인들의 임금 나사렛 사람 예수’의 약어라고.

 

성당의 대리석 바닥은 원, 사각형, 삼각형 등의 기하학적인 문양의 코스메딘식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그리스어 형용사인 ‘kosmidion’ 아름다운, 장식된이라는 의미로, 이 양식은 중세의 성당에서 바닥, 주교좌, 성가대석 및 천개(발타키노) 등을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분이실까?
관광객을 위한 시내 이동용 전기자동차인 듯

 

성당을 나오면 길 건너편에 정복자 헤라클레스 신전 Temple of Hercules Victor이 있다. 로마에 있는 대리석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니 역사적 가치가 클 것이다. 그러나 찾는 사람이 드물다. ‘로마의 휴일에 안 나와서?

정복자 헤라클레스 신전  Temple of Hercules Victor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Acro di Constantino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은 높이 21m, 너비 25m로 로마에 현존하는 가장 큰 개선문이다.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가 밀비오다리 Ponte di Milvio에서 당시 지도자 막센티우스 Maxentius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로마제국의 지도자가 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사실 밀비오다리의 전투에서 원로원은 군사적 우위에 있던 막센티우스를 위한 개선식과 개선문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가 승리하자 시간에 쫓겨 이미 포로 로마노 안에 세워졌던 개선문 3개를 부수고 다시 합쳐 지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만들었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정면과 상부 옆면의 부조가 다르게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Acro di Constantino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Acro di Constantino 앞에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Acro di Constantino 옆 모습

 

콜로세오 Colosseo

"네로 황제 뒤를 이은 베스파시아누스 Titus Flavius Vespasianus는 텅 빈 국고를 채우기 위해 새로운 세금 정책을 발표하였고, 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시민들의 불만을 억제하려고 콜로세오를 짓게 된다. 서기 72년 건설을 시작한 콜로세움은 네로의 궁전의 뜰에 있었던 인공 연못에 지어진 것으로 서기 80년에 완성되었다.

콜로세오는 이전 그리스 양식의 반원형 극장 2개를 붙여 놓은 듯한 모습으로 설계되어 처음에는 암피오 테아트로 Ampio Teatro(원형 투기장, 원형 극장)으로 불렸다. 대형 원형 투기장 겸 극장으로, 검투사와 짐승과의 격투기 등이 개최되었으며 약 80개의 출구에 5 5000명도 넘는 관객이 입장할 수 있는 경기장이다. 고대 로마 유적 중 가장 규모가 크며 최대 지름 188m, 최소 지름 156m, 둘레 527m, 높이 57m 4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콜로세오라는 이름은 네로황제가 자신을 본떠 세웠다는 태양신의 거상(콜로수스) 앞에 만들어졌다 하여 콜로수스 Colossus에서 따온 것이라 전해진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된 콜로세오는 오늘날에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기념비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콜로세오 Colosseo
콜로세오 Colosseo

 

콜로세오 Colosseo

 

콜로세오 Colosseo를 배경으로

 

주요 참고 자료

웹 검색

염승범박소미황창근김은성. 2019. [유럽여행 백서].

하나투어. 패키지 설명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