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여행

바람, 터키를 가다 8: 좋은 숙소와 식당, 고대 유적이 있는 셀축과 에페스 유적 2 (2017.1.4.수)

바람2010 2017. 2. 12. 21:22

아침에 일어나 에페스 고고학 박물관에 다시 갔습니다. 그러나 8:30부터 입장할 수 있다고 다시 오라네요. 안내판에는 분명히 8시부터로 되어 있는데, 황당했지만 할 수 없이 다시 호텔로 돌아와 아침 먹고 다시 가기로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숙소가 박물관 근처 라는 것….

 

이 호텔도 작은 규모라 그런지 아침 준비가 안내된 시간(8~12)보다 늦습니다. 8:25에도 여전히 준비중, 8시 반경부터 먹을 수 있었습니다. 박물관에 다시 가야 해서 마음은 급했지만, 이날 아침은 정말 훌륭했습니다. 지금까지 먹어 본 호텔 아침 중에 가장 훌륭했고, 터키 여행 와서 먹은 식사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뷔페가 아니라 주인이 테이블에 직접 차려 줬고 전부 홈 메이드라고 합니다. 보기도 멋지고 맛도 훌륭합니다. 커피로 터키식이 아니라 우리가 먹는 filtered coffee입니다. 시간이 촉박해 느긋이 즐길 순 없었지만 최고의 아침이었습니다.

 

에페스 고고학 박물관

듣던 대로 못생긴 소크라테스 두상

아침 먹고 다시 박물관에 가서 30분 남짓(8:50 ~ 9:25) 봤습니다. 이 날의 주요 일정인 에페스 투어에 참가해야 해서 여유가 없었습니다. 에페스 박물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르테미스 여신상과 에로스 상 등 귀한 유물도 많고, 다양한 에로스 상이 있는 전시실, 로마 황제 두상을 모아 놓은 전시실, 소크라테스 방 전시실 등 볼 것도 많습니다. 입구쪽에서는 에페스 유적을 소개하는 영상도 상영합니다. 한 시간 반 내지 두 시간 정도는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고대 에페스가 모시던 아르테미스 여신상들입니다. 가슴에 달린 20여 개의 알 모양은 여신의 유방, 여신에게 바친 소의 고환, 꿀벌의 알 등 다양하게 해석된다고 합니다. 이런 알 모양이나 여신상에 새겨진 꿀벌, 사슴, , 사자의 조각 모두 풍요와 다산의 상징입니다.

 

다산의 상징인 아르테미스 여신상 다산의 상징인 아르테미스 여신상

 

 

 

 

10시 경에 에페스 투어를 같이 할 가이드와 일행들을 만났습니다. 엄격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유적 설명할 땐 재치가 넘치는 가이드, 젊은 한국인 남성 둘, 남아프리카에서 온 가족들(부부와 딸), 인도에서 온 젊은 여성. 다양한 곳에서 온 적당한 규모의 인원입니다.

 

에페스 유적

에페스는 에게 해 연안에 있는 거대한 고대 도시 유적으로 성경에서는 에베소라 부르는 곳입니다. 기원전 10세기 경 그리스의 이오니아인들이 건립한 식민 도시였고, 이후 스파르타, 페르시아, 페르가몬, 로마 등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에게 해 무역의 중심 도시로 번영했고, 기원전 129년 로마 제국의 아시아 수도로 정해지면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당시 에페스는 로마 다음으로 손꼽히는 인구 25만의 대도시로 성장했는데 지금 남아 있는 유적들의 대부분은 이 때의 것입니다. 그러나 7세기 경 강에서 유입된 토사로 항구가 잠기고 전염병이 돌아 항구 옆 도시는 버려지고, 현재 성 요한 교회가 있는 아야술록 언덕으로 도시가 옮겨졌으나 급속히 쇠락했다고 합니다.

 

우리 일행은 언덕 위쪽에 있는 남문에서 시작해 언덕 아래쪽에 있는 북문으로 내려오면서 구경했습니다.

 

오데온

2세기 경 지어진 야외극장으로, 당시에는 목재 지붕이 있었고 1,5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소규모 콘서트나 시 낭송회 같은 행사를 열기도 하고, 시의회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관청 건물

지금은 기둥 몇 개만 남아 있지만, 당시에는 도리아식 기둥들로 둘러싸인 정원 제단에 꺼지지 않는 신성한 불이 있었다고 합니다. 1956년 이곳에서 발굴된 두 개의 아르테미스 조각상은 현재 에페스 고고학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폴리오 샘

서기 97년 폴리오와 그의 가족들이 세운 공공 분수로, 수로를 통해 세 군데의 수원으로부터 이 곳까지 물을 모은 다음, 수도관을 통해 도시 전체로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멤미우스 기념비

1세기 멤비우스가 자신의 할아버지였던 로마 최조의 종신 독재관 술라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비. 술라가 에페스를 탈환하는 장면과 술라를 칭송하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멤비우스의 가족의 조각상들은 파손된 채 있다.

 

 

도미티아누스 신전

81 ~ 96년 사이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대에 만든 신전으로, 에페스에서는 황제의 이름을 따서 지은 최초의 건축물입니다. 도미티아누스는 철권을 휘두르며 2의 네로라 불렸던 황제로, 그리스도교를 박해해 사도 요한을 밧모 섬으로 귀양 보냈습니다. 도미티아누스가 가신들에게 암살당한 후 그의 이름이 붙은 모든 건물은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니케 여신 부조

승리의 여신 니케의 부조로 왼손에 든 월계관과 여신의 날개가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헤라클레스 문

쿠레테스 거리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개선문인데, 헤라클레스의 모습이 기둥에 새겨져 있어서 붙은 이름입니다. 보행자 전용 도로였던 쿠레테스 거리로 수레가 들어갈 수 없도록 문 사이 폭을 좁게 만들었답니다. 본래는 큰 건물의 일부분이지만 다른 부분들은 발견되지 않았고, 니케 여신 부조도 이 개선문의 아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쿠레테스 거리

헤라클레스 문에서 켈수스 도서관까지 이어지는 대리석 거리입니다. 길 양쪽으로 늘어선 열주들은 지붕을 받치고 있었고, 기둥 사이에는 에페스 주요 인물들의 석상들이, 기둥 뒤쪽으로는 상점과 신전 등이 세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트라이아누스 샘

2세기 경 트라이아누스 황제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분수탑으로, 2층으로 지은 12m 높이의 분수탑 중앙에는 황제의 동상이 있었지만, 지금은 조각상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현재 에페스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디오니소스, 아프로디테, 비커스 등의 신상과 왕족 동상도 이곳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히드리아누스 신전

2세기 경 히드리아누스 황제를 위해 지은 신전으로 쿠레테스 거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특히 앞쪽 아치에 새겨진 행운의 여신 티케의 조각이나 뒤쪽 아치에 새겨진 메두사 조각이 눈길을 끕니다.

 

 

 

 

 

 

 

 

 

 

공중화장실

50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 앉는 곳 앞쪽에는 볼일을 마친 후 뒤처리를 할 수 있는 수로가 있습니다. 부자들은 돈으로 사람을 사서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고 하는군요.

 

 

 

켈수스 도서관

학문을 사랑하던 로마의 아시아 총독 켈수스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아들 율리우스 아킬라가 아버지 묘 위에 건설한 도서관으로, 에페스 유적 중에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인 건물입니다. 정면 구조물은 코린트 양식과 이오니아 양식이 혼합된 기둥으로 세워졌습니다. 지혜와 지식, 지성과 용기를 상징하는 네 여인의 조각상도 세워져 있습니다.

 

밖에서는 2층 건물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의 공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1 2000여 권의 두루라미 형태 서적을 소장하고 있었고, 서적이 손상되지 않도록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구조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 문

켈수스 도서관에서 상업 아고라로 이어지는 통로로, 노예신분이던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가 해방되면서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그의 가족에게 감사의 표시로 바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노예였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수 있었을까요?

 

 

 

대리석 대로

켈수스 도서관에서 원형극장까지 이어져 있는 거리. 1세기 경 아르테미스 신전까지 이어지는 길로 만들어져 여러 개축되었는데, 현재까지도 보존 상태가 좋습니다. 보행자와 마차가 다니던 길이 분리되어 있고, 길 아래에는 대형 하수도 시설이 놓여 있습니다.

 

 

 

 

 

 

 

 

 

 

 

 

여자 모습과 발자국

대리석 거리에는 여자 모습과 왼쪽 발자국이 새겨진 바닥이 있는데, 고대 매춘 장소로 추정되는 곳을 알리는 세계 최초의 광고였다고 합니다. 이쪽으로 오라는 방향 표시라는 설과 새겨진 발자국 크기 이상인 성인만 올 수 있다는 뜻이라는 설 등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발자국이 상당히 큽니다.

 

 

 

 

 

 

 

 

 

 

 

대극장

거의 완벽하게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아시아 최대의 그리스-로마 극장입니다. 기원전 3세기 리시마쿠스가 건설을 시작해 헬레니즘 스타일이 군데군데 남아 있지만, 로마 초기인 41~117년 사이에 대대적인 확장 공사를 하면서 로마식으로 변형되었습니다. 시민들을 위한 연극이나 회의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로마 말기에는 검투사들의 경기가 벌어지기도 했답니다.

 

 

중앙 무대의 지름이 40m에 이르고, 2 5,000명을 수용하는 관중석은 위로 갈수록 점점 급경사를 이루어 어디에서든 무대가 잘 보이도록 만들었고, 점토판이나 청동관을 잘

배치해 완벽한 음향시설을 만들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 실제 공연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답니다. 우리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렵죠. 고대에 이런 극장을 만들었다는 것도, 얼마 전까지 이런 유적을 실제 공연장으로 사용했다는 것도.

 

이 대극장은 에페스인들의 아르테미스 숭배와 초기 그리스도교 선교가 갈등을 빚었던 곳으로, 서기 50년 경 사도 바울이 바로 이곳에서 설교하던 중 추방되었다고 합니다.

 

 

 

 

 

아르카디아 거리

대극장에서 항구를 향해 뻗은 대리석 도로. 헬레니즘 시대에 세운 도로를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아르카디아가 수리했습니다. 11m 너비의 열주로가 500m 넘게 이어지고 길 양 엎에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고 합니다.

 

성모 마리아 교회

성모 마리아를 모신 최초의 교회로 원래 로마 시대 바실리카였던 곳을 증축했습니다. 431년 삼위일체 사상을 그리스도교 정통 교의로 확인하는 에페스 공회가 이곳에서 열렸다고 합니다.

 

 

대략 두 시간 정도에 에페스 유적을 살펴 봤습니다. 사실 대단히 짧은 시간입니다. 주요 거점 설명과 사진 찍기 위주로 진행되는 투어라고 할까...... 유적지 안에 화장실도 없고 두 시간 내내 걸어야 해서 이렇게 맞춰진 것 같은데 너무 날림으로 본 것 같아 많이 아쉬었습니다.

 

마리아의 집

오후에는 성모 마리아가 여생을 보냈다는 마리아의 집에 갔습니다. 이 곳의 유래를 알려주는 한글 안내판도 있습니다. 한국인들도 많이 온다는 뜻이겠지요. 그리스도교만 아니라 이슬람교의 순례지로도 유명한 곳이라는군요.

 

 

성수가 나온다는 샘도 있습니다. 입구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는 성수를 조그마한 병에 담아서 팝니다. 1~2유로 정도였던 같은데, 기독교인에게는 의미 있는 기념품이 될 듯 합니다. 에베소에 있는 성모 마리아의 집 성수가 담긴 것이니….

 

한 쪽 벽에는 소원을 비는 쪽지들이 무겁게 달려 있습니다. 새해 들어 한글로 쓴 쪽지도 있더군요.

 

 

아르테미스 신전

에페스의 수호신인 아르테미스를 모시던 신전으로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합니다. 120년 동안 지어진 신전은 건물 전체를 대리석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건물이고, 당시 그리스 건물 중 가장 큰 규모로 가로 115m, 세로 55m 19m짜리 기둥 127개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완공 후 7번이나 파괴되었다가 다시 지어졌는데, 기원전 356년 헤로스트라투스라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불을 지른 사건이 특히 유명합니다. 268년 고트 족 침입으로 파괴된 후,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후 신전은 버려졌고, 이후 신전의 돌을 성 요한 교회와 다른 건물을 짓는데 사용하면서 복구가 불가능해진 상태입니다. 19세기 중반에 발굴된 유물들은 대부분 대영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기둥 하나만 서 있습니다. 기념품 가게에서 당시 모습을 그린 그림이 담긴 책자를 팔기도 합니다.

 

 

 

 

에페스 유적 투어에는 도자기나 가죽 옷 등 특산품(?) 가게 방문이 끼어 있었습니다. 점심 전에 들린 도자기 가게에서는 재료가 특별해서 가볍다고 강조하더군요. 카파도키아에서 쓰는 붉은 진흙과 다른 재료이고, 도자기의 느낌도 상당히 다릅니다. 개인적으로는 카파도키아 도자기가 더 낫지 않나 싶습니다. 몇 사람이 무늬를 일일이 손으로 그리는 있던데, ‘참 고된 노동일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투어 마지막에는 가죽과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옷을 만드는 Emelda라는 패션 회사를 들렸습니다. 이 곳에서는 자신들의 옷을 광고하기 위해 작은 패션쇼를 엽니다. 그리고 그 패션쇼 중간에 관광객을 모델로 참여시켜서 런어웨이에서 워킹하도록 합니다. 우리 일행 중 탤런트 이동욱 스타일의 젊은 남성 한 사람과 남아프리카에서 여행 온 가족 중 딸이 모델로 참여했습니다. 나름 재미있는 이벤트였습니다.

 

셀축역

함께 한 일행들과 헤어져 셀축역에 왔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려 기차를 타고 이즈미르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기차 편이 자주 있지 않아 보통 버스로 이동한다는데, 그리고 나중에 알았지만 항공사에 따라서는 무료 셔틀을 운행하기도 한다는데, 이번 터키여행에서 기차를 타 볼 유일한 기회라 고집을 불렸습니다. 그래서 좋긴 했는데, 이래저래 시간 소모가 많았습니다.

 

기차역은 작고 볼 품 없지만, 기차는 현대식입니다. 자리에서 충전도 가능하고. 예매가 안되고 당일 표만 팔지만, 기차의 실내등은 LED입니다. 우리 시골 마을에 다니던 기차처럼 좌석은 지정되지 않지만, 표 검사는 승차권에 찍힌 바코드를 읽어서 합니다. 여러 모로 묘한 대조를 이루지요. 다른 대중교통처럼 기차 요금도 무척 쌉니다. 이즈미르 공항까지 5리라.

 

기차는 지하철 외곽선처럼 자주 정차하면서 갑니다. 영어 안내 방송도 나오지만, 친절한 터키인들의 도움으로 공항에서 잘 내렸습니다.

 

 

드디어 이스탄불로

지하철역에 내려 국내선 탑승까지 세 번의 보안 검색을 거쳐야 했습니다. 지하철역에서 공항 들어가기 전에 한 번, 공항에서 체크인 카운터 가기 전에 한 번, 체크인 후 탑승구로 가기 전에 한 번. 한번에 끝내는 우리 나라에 비하면 많이 불편하지만 테러가 종종 발생하는 나라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요.

 

기차 안에서 먹은 초코파이 세 개, 그리고 국내선 기내 서비스로 주는 큼지막하고 따끈따끈한 빵과 커피로 이 날의

저녁을 대신했습니다. 드디어 이번 터키 여행의 마지막 경유지, 이스탄불로 날아갑니다.

 

늦은 시간이고 초행이라 이스탄불 공항에서 호텔까지 픽업 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승합차에 승객은 나 혼자. 비용도 혼자 부담해야 해서 무려 30유로. 이스탄불에서 묵은 호텔이 1박당 30유로였는데…. 이번 터키 여행에서 가장 과했다는 생각되는 지출입니다. 혼자라면 지하철과 트램 아니면 셔틀을 추천합니다.

 

멋진 여행기를 쓰고 싶었는데, 내공도 시간도 부족하네요.

현재로선 어찌할 없는 형편이라 기록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