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여행

바람, 터키를 가다 10: 1600년 동안 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 2 (2017.1.6. 금)

바람2010 2017. 2. 14. 23:02

 

경의의 문

로맨틱 투어에 참가한 관광객은 혼자라서 날은 private guide 받은 셈이 되었습니다. 다른 일행이 있었던 전날에 비해 좋은 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점도 있었습니다.

 

방문지는 톱카프 궁전. 1453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메흐멧 2세가 1459 비잔티움 제국의 아크로폴리스가 있던 자리에 지은 궁전으로, 이후 1856 압뒬 메지트 1세가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옮기기 전까지 400 동안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이 살았던 곳입니다. 70m2 넓은 부지에 5km 성벽으로 둘러싸인 궁전에 전성기에는 5000명이 거주했으며, 현재는 8 6000 점의 보물을 소장한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이던 투르크 족의 전통에 따라 톱카프 궁전은 넓은 정원을 중심으로 사방에 건물을 세우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궁전의 성벽 가장 바깥에 있는 황제의 문을 통과하면 톱카프 구정의 1정원이 나옵니다. 1정원을 지나면 2정원으로 들어가는 경의의 문이 나옵니다. 술탄 이외에는 모두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한 다음 통과할 있었기 대문에 경의의 문이라 이름 붙었고, 곳부터는 일반 백성들의 출입 금지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입장권을 사야 들어갈 있습니다.

 

3정원의 정문인 행복의 문은 여섯 개의 원형기둥과 화려한 지붕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아래에서 술탄의 대관식이 열렸으며 술탄이 참가하는 종교 축제도 해마다 열렸습니다.

행복의 문

 

제3정원에 있는 술탄의 접견실 접견할 때 대화를 엿듣지 못하도록 물을 틀어 놨다고

 

접견실 다음부터는 술탄의 개인 공간으로 백인 내시들이 운영했기 때문에 3정원을 백인 내시의 정원이라고 불렀습니다. 데브쉬르메 제도로 징집된 기독교 출신 아이들을 이곳에 있는 궁정 학교 엔데룬 Enderun’에서 관리 양성 교육을 시켜 오스만 제국의 행정관리로 배치했습니다. 강제 징집되어 가족과 마을을 떠난 것을 슬프고 불행한 일이지만, 배타적이지 않은 오스만의 인재 정책은 선진적인 면이 있었던 같습니다. 그것이 또한 제국의 힘이 되었겠지요.

 

3정원에는 톱카프 궁전의 하이라이트인 보석 박물관과 이슬람 성물 전시관이 있습니다. 보석 박물관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은 보물들을 진품으로 전시해 놓았고, 이슬람 성물 전시관에는 무함마드의 외투와 , 턱수염, 모세의 지팡이, 다윗의 , 세례 요한의 손뼈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가난한 평민들이나 입었을 같은 무함마드와 딸의 옷은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짐작하게 줍니다. 이교도인 기독교인들이 성스럽게 여길 물품들도 소중하게 보존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슬람의 알라는 특정 신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뜻의 이슬람어라네요. 사실 이슬람은 기독교의 하나님과 다른 신을 섬기는 아니고 유일신을 믿으며 기독교의 주요 성인들 예수, 성모 마리아, 세례 요한 등을 존중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슬람 경전인 꾸란에는 남녀가 평등하다는 이야기가 29번이나 나온다고 합니다.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었다는 성경과는 대조적이죠. 편견과 달리 이슬람이야말로 관용과 평등의 종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정원에는 상징으로 사용되거나 실제 전투용으로 사용된 다양한 무기들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모두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술탄과 가족들의 개인 공간이었던 4정원에는 아름다운 정자들이 있습니다. 정자들에서 마르마라 해와 보스포루스 해협이 보입니다.

 

제4정원의 정자들

 

보스포루스 해협 분수 ..

 

하렘 입구

2정원에서 번째 길을 따라가면 궁전의 여인들이 살던 곳인 하렘으로 이어집니다. ‘금지된이라는 뜻의 아랍어 하람에서 비롯된 하렘 Harem’ 이슬람 사회의 부인들이 거처하는 공간으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 남자들의 출입이 금지된답니다. 하렘에는 다양한 인종의 젊은 여성들이 다양한 경로(선발, 선물, 전리품, 노예시장) 들어와 교육 과정을 통해 이슬람 규율과 기예를 쌓으며 완벽한 여자 길러졌다고 합니다. 모든 여자들이 술탄에 속한 것은 아니었고, 신부감으로 높이 평가 받았기 때문에 고위 인사와 결혼하는 여성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음탕한 술탄과 그의 성적 노리개’… 이런 것은 대단히 악의적인 왜곡과 편견입니다.

 

하렘의 여성들이 궁전의 실질적인 운영을 담당했고, 특히 술탄의 어머니와 누이, 부인 등은 오스만 제국에서 매우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재위 중인 술탄의 어머니인 발리데 술탄은 하렘을 다스렸고, 왕실의 상징이자 통솔자로 권한과 영향력이 컸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을 술탄으로 만들기 위한 권력 투쟁이 치열했다고 합니다.

 

궁녀들은 능력에 따라 승급도 했고 나이 들면 퇴직금을 받으며 은퇴할 있었다고 합니다. 술탄과 잠자리를 같이 여인들은 괴즈데 또는 익발이 되어 왕실의 일원이 됩니다. 술탄의 아들을 낳은 순서에 따라 명까지 있었던 카든은 왕실의 특권을 누릴 있는 계급이었고, 특히 황태자의 어머니는 미래의 발리데 술탄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방들은 푸른 타일과 스테인드글라스 등으로 매우 아름답게 꾸며져 있습니다.

 

 

곳에 요리를 갖다 놓으면 하렘 여성들이 가져다 먹었다는군요. 그러니까 직접 요리를 하지는 않았다는 거지요.

 

 

 

 

 

 

 

 

 

 

 

 

 

. . 벽 난로

 

 

가이드가 거북이 등껍질과 대리석 조각을 붙여서 장식한 것이라고 설명했던 같습니다. 우리 자개 장식보다 내구성이 좋다고.

 

 

 

 

 

 

 

 

 

 

 

 

 

 

 

 

여기는 술탄이 쓰던 방이라고 했던 같네요. 기억이 가물가물

 

 

. 조각조각 붙여서 화려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여기는 왕자들의 공간. 6개의 구멍은 왕자들의 터번을 놓던 자리.

 

 

 

 

아래 보이는, 돌로 바닥이 보이는 곳은 실외 수영장입니다. 큽니다.

 

 

하렘 여성들을 교육하던 곳입니다.

 

 

나가는 문 뭐였더라?

 

점심은 맛있었습니다. 특히 오트밀 스프가 훌륭했고, 아메리카노도 좋았습니다. 어제 점심을 먹었던 도이모이 식당 근처 식당이었는데, 식당 이름이 기억나지 않네요.

 

 

점심 먹고 곳은 시르케지 , 1883년에서 1977년까지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종착역이었습니다. 파리를 출발한 초특급 호화 열차가 유럽 대륙의 끝인 이곳에 서면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 아시아 대륙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했답니다. 하루 전날 탔던 세계에서 가장 짧은 지하철 튀넬이 오리엔트 특급에서 내린 승객들이 페라 팰리스 호텔까지 편안하게 이동할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었다고. 지금은 오리엔트 특급의 운행이 중단되어 추억 속의 역이 되었지만,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마르마라이 해저터널 지하철 개통에 따라 다시 활기를 찾고 있습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배경이 곳이기도 하지요. 당시 쓰던 종도 아직 남아 있네요.

 

 

2014 완공된 유라시아 해저터널 마르마라이는 세계 최초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해저터널로 세계에서 가장 깊고 해저 터널입니다. 공사 중에 유물이 많이 발견되어 공사 기간도 대폭 늘어났고, 때문에 공사를 맡았던 일본 회사가 늘어난 공사기간과 공사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포기하려고 했는데 터키 정부가 설득해서 완공시켰다고 합니다. 공사 발견된 유물들을 전시하기 위해 박물관을 짓는다는군요. 부러운 이야기입니다.

 

 

 

다음 방문지는 오스만 제국의 천재 건축가 미마르 시난(Mimar Sinan, 1489~1588) 지은 미흐리마 술탄 자미였습니다. 미마르 시난은 터키 전역에 자신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공식적인 것만 해도 자미 94, 대학 57, 예배당 52, 하맘 48, 저택 35, 튜루베 22, 대상 숙소 20, 이마렛 17, 다리 8, 창고 8, 신학교 7, 수도교 6, 병원 3 등을 지었고, 중에 84개가 이스탄불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미흐리마 술탄 자미는 미마르 시난이 90세가 되었을 , 사랑하는 미흐리마 공주를 위해 4년에 걸쳐 지었다고 합니다. 마침 기도시간이었습니다.

(미마르 시난과 그의 슬픈 사랑이야기는 다음 링크를 참조하세요.

미마르 시난, 그가 이룩한 이스탄불의 http://young.hyundai.com/magazine/campus/detail.do?seq=12666

터키의 건축 거장 미마르 시난 Mimar Sinan

http://www.travie.com/bbs/board.php?bo_table=travie&wr_id=19186&sca=%ED%95%B4%EC%99%B8%EC%97%AC%ED%96%89 )

 

 

페리를 타고 다시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넜습니다. 비도 오고 날씨가 궂어서 실내에서 처녀의 탑을 봐야 했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정문

이제 투어의 마지막 방문지 돌마바흐체 궁전입니다. ‘돌마바흐체 땅을 메워 만든 정원이라는 뜻으로, 비잔티움 시대 작은 항구였던 지역을 메워 지었던 술탄의 별장을 압뒬메지트 1세가 1839 ~ 1856 유럽풍의 석조 건물로 다시 세운 궁전입니다. 압뒬메지트 1세는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술탄들 4명의 아버지로 어린 시절부터 받은 서구식 교육의 영향으로 유럽식 개혁을 꿈꾸었다고 합니다. 압뒬메지트 1세는 오스만 제국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해 화려한 궁전을 지었다고 하는데, 기울어가는 형편에 국력을 낭비해 오히려 몰락을 재촉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합니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로 ,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유럽식 건축물로 길이가 600m 이르고, 285개의 방과 43개의 살롱, 6개의 욕탕 등이 있으며, 이를 꾸미기 위해 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이 쓰였다고 합니다. 36m 높이의 천장과 56개의 장식 기둥을 자랑하는 무아예대 홀에는 빅토리아 여왕이 선물한 무게 4.5톤의 샹들리에가 있습니다. 샹들리에는 750개의 전구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전력 소비가 많아 LED 등으로 교체했고. 그러고도 국빈 방문 국가적인 행사 때만 등을 켠다고 합니다.

 

 

건물 안에서는 관람용 카펫이 깔린 곳만 있고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비도 많이 와서 외부 사진도 장밖에 찍었습니다. 아쉽습니다.

 

 

 

궁전이 마치 보스포러스 해협에 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제 가이드와도 작별하고 혼자 남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친절한 터키인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트램을 타고 이스탄불 구시가지로 복귀했습니다. 저녁은 1920 개업한 이스탄불 최고의 쾨프테 맛집이라는 타리히 술탄아흐멧 쾨프테지시에서 쾨프테를 먹었습니다. 우리나라 떡갈비랑 비슷한데 나름 맛있습니다. 다음 점심도 이곳에 와서 쿠주 쉬쉬를 먹었습니다. 터키에서는 역시 쇠고기보다 양고기가 맛있습니다.

 

쇠고기 쾨프테와 피야즈(삶은 통이 들어간 샐러드) 역대 사장들?

 

100% 양고기를 직접 구운 쿠주 쉬쉬(양꼬치 구이) 근처에 비슷한 이름의 식당이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1920년을 확인해야 합니다.

멋진 여행기를 쓰고 싶었는데, 내공도 시간도 부족하네요.

현재로선 어찌할 없는 형편이라 기록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