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생각, 노동자 이야기

노동조합! 지킬 것인가, 버릴 것인가? - 정당성과 현실성, …

바람2010 2010. 4. 3. 17:42

노동조합! 지킬 것인가, 버릴 것인가? - 정당성과 현실성, …

 

금속노조 의무교육 방침에 따라 노동법 개정과 노동기본권 사수 투쟁을 중심으로 올 해 투쟁에 대해 조합원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교육 주제이자 부제목은 <노동법 개정과 우리의 대응>입니다. <노동법 개악과 우리의 투쟁>이 아닙니다. ‘개악’ 대신 ‘개정’, ‘투쟁’ 대신 ‘대응’으로 썼습니다.

 

교육의 1차적인 초점은 정당성의 확보/설득입니다. 대다수 조합원들이 개정된 노동법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 관심도 많지 않은 상황이고, 정부와 자본, 그리고 보수 언론의 단순하지만 강력한 이데올로기, 이른바 상식 논리에 설득당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노동조합 전임자 임금을 왜 회사가 주어야 하나? 당연히 노동조합이 줘야지’

‘복수노조 허용하면 노조가 난립할 텐데, 회사가 제대로 운영되겠나? 단일화해야지. 당연히 노동조합부터 의견을 모아야지’.

상식적이기 때문에 강력한 논리들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간부들도 이런 논리들을 명쾌하게 반박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저 상대는 나쁘고 우리에게는 손해다, 그러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정도?

조합원들이, 간부들이 노조의 주장에 대해 정당하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데, 우리의 요구에, 투쟁에 힘이 실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로부터 큰 일을 도모할 때는 뜻을 먼저 세운다고 하였을 것입니다. 정부와 자본, 보수언론의 논리를 깨고 우리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교육을 진행합니다.

 

1차적인 목표인 정당성 확보/설득은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것 같은데, 이제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데, 참 난감합니다.

금속노조의 기본전략은 새 법의 적용 유예기간(전임자 임금 금지 6개월,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1년 6개월)내 특별교섭을 통해 법의 적용을 추가로 유예 혹은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참 허술한 전략입니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법의 시행시기를 놓고 정부와 노동계가 논란하고 있지만, 이러한 논란은 현실적으로 별 의미가 없습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상반기내 합의하지 않는다’는 아주 단순하고도 강력한 전술을 사용하면 그 뿐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용자들은 특별교섭에 응하지도 않고, 응한다 한들 형식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4월 내 특별단체교섭이 타결되지 않는다면 임단협과 연계해서 상반기내에 타결하겠다는 전술도 마찬가지로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역시 사용자들은 시간을 끌면 됩니다. 오히려 공세적으로 단협 개악안을 던지는 방법도 있구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더 유예하자고 무리하게 임단협을 조기 타결할 수 있을까요? 양보교섭이라도 해야 할까요? 다른 주요 요구안이 관철되었는데, 전임자 임금 문제로 타결을 지연할 수 있을까요?

정당성 획득 다음엔 이른바 현실성이 문제가 됩니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관련된 금속노조의 요구안은, 한마디로 법은 바뀌지만, 이전에 확보한 전임자와 조합원의 활동을 계속 보장하라는 것입니다.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와 관련된 금속노조의 요구안 역시 법은 바뀌지만, 창구단일화 절차 없이 교섭에 응하겠다-자율교섭제에 동의한다고 약속하라는 것, 즉 사용자가 바뀐 법을 활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법은 바뀌지만, 금속노조 사업장에서는 법을 적용하지 말라는, 일종의 ‘치외법권’을 만들자는 이야기입니다. 글쎄요, 이게 현실성 있는 이야기일까요? 조합원들이 ‘이렇게 싸우면 되겠구나’라고 느낄까요? 조합원들이나 간부들이나 사업장 내에서 적당하게 편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시간도 부족하고, 내용도 부실하지만, 빠듯한 시간을 쥐어짜면서, 빨리 끝내달라는 일부 조합원들의 간절한 시선을 외면하면서 말미에 조금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합니다. 개정된 노동법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근본적으로 노동조합을 바꿔야 한다, 이른바 87년/97년 체제를 넘어서야 한다고. 그러나, 이런 고민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을까요? 간부들과 노동조합의 답답한 모습을 보면서 절망하기도 하지만, 교육 끝날 때 받는 설문조사에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를 이야기해 달라, 어려운 현실만 이야기하지 말고 비전을 이야기해 달라고 적은 몇 사람의 의견을 보면서, 지금 조합원들에게 내세울 대안은 빈곤하지만,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 노동법 개정 관련 교육의 주제목은 뭘까요? <노동조합! 지킬 것인가, 버릴 것인가?>입니다. <노동조합! 뺏길 것인가, 지킬 것인가?>가 아닙니다. 뭐가 다르냐구요? ‘뺏길 것인가, 지킬 것인가?’는 지킬려고 하는데 ‘지킬 수 있는가, 없는가?’하는 능력의 문제, 그래서 결국 ‘지키는가, 못지키는가?’하는 결과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지킬 것인가, 버릴 것인가?’는 그 이전에 ‘지킬까, 말까?’를 고민하는 문제, 즉 의지의 문제, 선택과 결단의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노동자들에게, 우리 사회에 노동조합은 여전히 ‘당연히 지켜야할 무엇’일까요? 우리 스스로에게, 조합원에게, 우리 사회에 이른바 민주노조까지 포함해 노동조합이 여전히 필요한가를 묻는 것입니다.

 

이번 상반기 조합원교육의 전체 주제는 <2010! 노동조합, 갈 길을 묻다>로 잡았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정말 진지하게 물어보고, 답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2010.04.03.토. 바람>

노동조합_ 지킬것인가버릴것인가_정당성과현실성.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