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생각, 노동자 이야기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투쟁 관련 몇 가지 생각

바람2010 2010. 12. 8. 12:07

  

현재 진행중인 투쟁이고, 이 투쟁과 관련해 직접적인 책임을 질 위치에 있지 않은 까닭에, 여러 고민에도 그 동안 침묵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몇 마디 이야기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몇 가지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비록 독백에 불과할지라도.

 

……………………………………………………………………………………………………

 

어제 울산에서 오신 동지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현재 진행중인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정도가 기억에 남습니다.

 

첫째, 정규직의 지원과 연대가 아니라 정규직의 투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회사가 입고 있는 피해-생산 타격이 알려진 만큼 크지 않다는 점, 현자지부가 음식 갖다 주고, 회사 침탈 막고,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 현장조직들도 목소리만 높지 최선을 다하고 있지는 않다는 이야기 등을 했습니다.

 

98년 정리해고 저지 투쟁 때 굴뚝에 올라갔던 것처럼, 전직 위원장들, 아니면 현장조직 의장들처럼 상징성 있는 정규직 활동가들이 농성에 직접 결합해서 정규직 조합원들에게 호소하고, 정규직의 투쟁으로 만들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아직 경험도 부족하고 조직력도 취약한 비정규직지회와 노동자들이 농성장에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본인이라도 직접 들어가려고 했지만, 후배들이 상징성 큰 활동가들이 결합할 수 있도록 해보겠다며 만류했답니다. 그러나, 실제로 진행은 안되었죠.

 

둘째, 이번 투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전원 정규직화같은 원론적인 주장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여러 상황에 근거해 판단할 때-당연히 이 싸움은 현대차 자본과의 싸움이지만, 그 뒤에는 정부와 다른 거대자본이 있습니다-, 계속 원론적인 주장만 고집하면, 실제로 승리하기는,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입니다.

회사는 계속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갈라 칠 것이고, 지부 집행부를 압박할 것입니다. 휴업 등의 조치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상당한 경제적 손실까지 입게 되면, 아직은 일부 회사측 정규직들만 나서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규직 조합원들의 여론이 악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여론이 악화되고, 회사의 압박이 강해지면 지부 집행부는 명분을 축적한 후, 빠져 나갈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처절한 파국을 맞게 되는 것이죠. 일부 조직과 활동가들은 아름다운 승리/패배라고 미화하겠지만, 대중들에게는 엄청난 상처를 남길 것이고, 깊은 반동의 수렁으로, 체념으로, 순응으로 빠져들 것입니다.

이런 뻔한 결말이 아닐려면, 냉정한 판단과 치밀한 전략전술이 필요할 것입니다. 교섭 성사만으로 농성을 해제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전원 정규직화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일부라도 성과를, 정규직화를 쟁취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되면 이를 기반으로 계속 확대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투쟁 현장에 흔히 난무하는 과격한 주장, 마치 이 싸움 하나에 세상 전부가 달린 것처럼, 그래서 이 싸움에서 지면 전부 끝장이고, 이 싸움에서 이기면 세상이 확 바뀔 것이라는 듯한 주장과는 다릅니다. 개량주의 혹은 기회주의, 타협, 투항 등등으로 비난 받을 수 있는 주장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그런 흔한 주장보다 더 근본적인 입장입니다. 노동조합 초기부터 활동해 왔던 고참의 내공이 묻어나는 통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저러한 장애요인에도 불구하고, 누가??? 어떻게??? 일관된 방침으로 투쟁을 이끌어 갈 수 있느냐 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적인 투쟁 당사자이고, 비정규직지회 지도부가 이들의 일차적인 지도부이긴 하지만, 비정규직지회와 비정규직지회 지도부가 감당하기엔 벅차 보입니다. 지부 집행부에게 이 역할을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결국 남는 것은 금속 지도부가 되겠지요.

지위가 지도력에 큰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지위가 곧 충분한 지도력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금속노조 간부라는 것, 임원이라는 것만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지도력이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현재 금속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투쟁력과 정치력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했어야 할까? 금속 지도부가 직접 농성에 결합해서 동고동락하면서 신뢰를 쌓고, 권위와 지도력을 확보했어야 합니다. 아직 투쟁 경험이 많지 않은, 거대 자본과 정부를 상대하기 위한 노련함이 부족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정의와 열정에 불타고 있는 그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의견을 모아가야 합니다.

정작 비정규직 할당 임원이 비정규직이라서, 현대차 정규직이 아니라서 농성장에 못 들어가고,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호소력이 약하다면, 현대차 정규직 출신 임원이 들어가서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도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의견이 모아지지 않으면, 지도부와 대중의 의견이 엇갈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최선을 다해 노력했음에도 의견 일치가 충분하지 않고, 의견 일치가 불충분함에도 방침을 결정하고 결행해야 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 상황에서는 결국 대중들, 주체들의 판단을 존중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에 대해 충분히 평가하고 반성하면서 성장해가야 할 것입니다. 대중들도, 지도부도, 활동가들도… .

 

……………………………………………………………………………………………………

 

어제(12/7) 오후에 울산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12/8 총회 어떻게 될 것 같느냐는 물음에, ‘식당 옆 게시판에 총회 소집 공고문 한 장 달랑 붙어 있는 상황이라고 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합원들이 파업찬반투표 하는 지도 잘 모르고 있고, 투표 참여율도 높지 않을 것 같다고 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사실 현대차지부의 총회 소집은 여러 모로 마땅치 않습니다. 힘찬 투쟁을 위해 조합원의 총의를 모으겠다는 것, 규약과 규정에 근거해 조합원 총회를 실시하겠다는 거야 나무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당연한 것이지요.

문제는 조합원들의 총의를 모으는 총회, 투쟁하기 위한 총회, 그 자체가 강력한 투쟁인 총회투쟁인가 하는 것입니다. 다들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회피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속노조 전체가 결정한 사항을 현자지부만의 총회를 통해서 다시 결정하겠다는 것은 노동조합의 운영원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조합원 총회 없이 파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옳은 것도 아닙니다. 금속노조 차원의 쟁의/파업이라면, 당연히 금속노조 차원에서 조합원 의사를 묻는 게 정상입니다. 이것마저 부정하니, 현자지부만이라도 총회를 하겠다는 주장이 더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처럼 되어 버리죠.

또한 현자지부의 이번 총회소집은 스스로 정한 지부규정마저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지부 규정에 따르면 총회 소집공고는 최소한 7일전, 긴급 상황시에는 3일전에 공고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공지기간에 여유를 두는 것은 조합원들이 안건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고민해서 신중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형식적 구색 갖추기가 아니라. ‘6일 결정, 8일 총회 실시는 규정위반-반칙입니다. 이렇게 해서 조합원의 총의를 제대로 물을 수 있을까요? 문제는 너나 할 것 없이 집행하면서 이를 무시해서 사문화되어 버린 거죠.

 

어제 저녁, 전현노를 제외한 6개 현장조직에서 총회 반대 대자보를 내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육지책, 아니 자충수입니다. 조합원 총회를 하겠다는 데 하지 말라는 것은 명분이 떨어집니다. 그것도 총회 당일에 발행해서?

반대한다고 해서 총회가 취소될 상황이 아닙니다. 그럼 현장조직 소속 조합 간부들은, 특히 대의원들은 총회 진행에 협조하지 않을 건가요? 이것은 또 다른 문제를 낳죠.

현장조직들의 입장이 조합원들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투표 참여율이 떨어질 것입니다. 어쩌면 과반수 투표가 안되어 총회 성립이 안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현장조직들이 목적을 달성하는 건가요? 이 총회의 안건은 쟁의행위를 할 것인가 입니다. 총회가 부결되거나 무산되면 파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총회가 성립되고 가결되어야 파업을 하는 것입니다.

현장조직들의 고뇌는 이해하지만, 자충수일 뿐입니다. 시대에 뒤쳐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는 활동으로는 희망이 없습니다.

 

……………………………………………………………………………………………………

 

금속 파업을 둘러 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쟁도 마땅치 않습니다. 투쟁하기 위한 논쟁이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정치공방 같습니다. 그 끝은 단결과 승리가 아니라 분열과 패배이지요. 지금 상황에서 금속 차원의 파업은 불가능합니다. 공허한 논쟁과 공방을 멈추고, 승리하기 위해 실제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몇 사람들에게 고민을 토론한 적이 있지만, 이야기가 길어져서, 오늘 이 부분은 줄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런 주장을 했다, 내가 명분상,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야기꾼이 아니라 활동가라면, 정치꾼이 아니라 대중을 책임져야 하는 간부라면.

 

답답한 마음에 격하게 쏟았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