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전략의 역사, 로렌스 프리드먼 지음, 이경식 옮김 Strategy: A History, Lawrence Freedman, 2013

바람2010 2019. 4. 11. 17:22

전략이란 무엇인가? 때로는 거대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의미하기도 하고 때로는 음모를 내포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려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전략처럼 많은 사람들이 흔히 쓰이지만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달리 이해되는 개념도 드물다. 역사적 접근은 개념이나 존재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시도이다. 이 책은 전략의 기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전략과 그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다룬다. 현재로서는 ‘전략의 역사 및 개념 전체를 포괄하는 유일한 책’이라고 한다. 이 어려운 작업을 해낸 저자에게 감사하다.

방대한 작업 끝에 도달한 결론은 아직 “‘전략’에 대해 합의된 정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여러 분야에서 전략이 다르게 이해되고 사용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전략 고유의 다면성이 충분히 이해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전략과 분리할 수 없는 전략의 주체, 수립과 실행, 관련 역량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방대한 작업에도 성과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전략에 대한 심화된 이해를 할 수 있는 계기들을 제공한다. 우선 전략은 출발점의 권력 균형이 제시하는 것 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는 것에 관한 것, 즉 힘(권력)을 창조하는 예술이다. 전략은 당연히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 한다.

전략은 목표 규명과, 목표 달성을 위해 가용한 자원과 방법, 그리고 목적과 방법, 수단 사이에 일정한 균형 유지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법을 찾아내는 것만이 아니라, 가용한 수단에 의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발견될 수 있도록 목적을 조정하는 것 역시 요구한다. 따라서 전략에는 고유한 긴장이 있으며 이런 긴장에도 불구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 이에 대한 주체 내부의 동의를 형성해야 하기 때문에, 전략은 과학의 영역에만 속하지 않는 예술이기도 하다.

전략은 진화의 산물이다. 전략의 가장 근원적인 기원은 사회적 존재로서 존재 양식 자체이며, 가장 명시적인 기원은 전쟁의 기술(art of war) - 병법이고, 현재 전략에 대한 연구가 가장 발전한 분야는 경영학 – 전략 경영이다. 전략의 기원과 발전 과정, 활용 사례 등을 살펴 봄으로써 전략의 본질과 기능, 효용과 한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략은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그럴 듯한 환상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전략의 기원

진화론자들에 의하면, 전략은 희소하고 필수적인 자원 및 생존 투쟁의 자연스러운 결과 (strategy as a natural consequence of scarce vital resources and the struggle for survival)이며, 인간의 전략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공통적인 기본 특징이 있다: 속임수와 패거리 형성 그리고 폭력의 도구화 등. 이는 너무도 기본적이어서 침팬지 집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전략 지능 strategic intelligence’은 거친 자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복잡한 사회 환경 속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도 진화했다.

가장 먼저 전략이 명시적인 개념, 학문으로 등장한 것은 잘 알려진 것처럼 군사분야이다. 후대에 미친 영향으로 보면 가장 중요한 기원은 고대 그리스이다. 기원 전 5세기 아테네는 높은 지위의 장군(스트라테고스 stratêgos) 열 명으로 전쟁위원회를 구성했으며, 고대 그리스와 비잔틴에서 전략 strategy에 해당하는 단어는 장군의 지식(stratêgike episteme generals’ knowledge) 혹은 장군의 지혜(stratêgôn Sophia generals’ wisdom)였다. 900년 비잔틴 제국의 황제 레오 6세가 스트라테고스(stratêgos)의 업무를 지칭하는 전반적인 용어로 ‘스트레테지아’ (strategía)를 사용했고, 역사적 과정을 거친 후 전략(strategy)이라는 단어가 정립되었으며, 18세기 후반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뒤 19세기 초부터 전략이라는 단어는 군사 영역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어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용어의 정의에 대한 전반적인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사용되었다.

근대화를 주도한 유럽권에 한정하지 않고 보면, 전략의 명시적 기원으로 기원전 500년경 고대 중국 오나라의 장군인 손무가 기록한 총 13권의 전쟁 전략서인 손자병법(孫子兵法)(스즈키 히로키, 2014)을 들 수 있다. 손자병법은 춘추 말기의 군사 학설 및 전쟁 경험을 모두 묶은 책으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100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百戰不殆), 우세한 병력의 집중, 민첩한 기동작전 등의 수많은 기본원칙은 세계 각국 군사가들의 높은 평판을 얻었다(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12s2678a). 손자병법은 어원에 그치지 않고 전쟁의 기술로서 전략(戰略)의 진수를 보여준다.

 

전략의 특징

전략은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우선 전략은 실제적 혹은 잠재적 갈등이 있는 상황에서 작동한다. 전략은 이해관계와 관심사가 다른, 아마도 적대적인 사람들이 계획을 좌절시킬 수도 있을 때 필요하다. 이 점이 일반적인 계획과 다르다.

또한 불확실성 – 예측불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좋은 전략은 ‘불확실한 변수들이나 돌발적인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전략은 궁극적인 목표들을 포함해 본래 전략의 재평가와 수정을 요구하는, 예측되거나 기대되었던 것과는 아주 다른 상태들의 연속을 통해 진화한다. 이 점에서도 일반적인 계획과 다르다.

그리고 전략은 피할 수 없는 근본적인 긴장 속에 있으며, 이 긴장 속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전략적 긴장의 대표적인 예들은 신념 윤리(궁극적 목적에 기반) vs. 책임성의 윤리(결과에 대한 책임, 결과로 행위 평가), (설사 대의에 해롭더라도) 내재적 원칙에 따라 행동 vs. 가능성 높은 결과에 따라 행동, 대의 vs. 성과, 목적 vs. 수단 등이다.

모든 전략적 사고에는 이분법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중 가장 강력한 이분법은 호머가 도입한 비에 biē와 메티스 mētis(힘과 교활함 strength and cunning)의 구분이다. 이 구분은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었다: 물리적 승리 vs. 정신적 승리, 힘에 의존 vs. 지혜에 의존, 용기에 의존 vs. 상상력에 의존, 적을 직접 상대 vs. 간접적으로 접근, 명예롭게 패배할 준비 vs. 속임수로 생존 추구.

전략은 여러 수준과 여러 면에서 복합적인 관계를 가진다. 흔히 전략은 오로지 적들과 경쟁자들에 관한 것으로 제시되지만, 우선 동료들과 부하들이 전략과 그것이 어떻게 실행되어야 하는지에 동의해야만 한다. 내부적 동의를 얻는 것은 흔히 대단한 전략적 수완을 요구하고, 분열이 초래하는 취약함 때문에 우선 사항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이해관계와 관점의 수용은 타협의 산물을 초래할 수 있고, 전략은 유능한 적을 상대할 때 차선에 그칠 수 있다.

동맹이 될 수도 있는 삼자를 포함해, 필요한 협력의 범위가 더 클수록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더 어려워진다. 가정된 친구들 사이에 긴장이 있을 수 있는 반면 협상의 토대를 제공하는, 공유된 이해관계의 영역 역시 있을 수 있다. 협력과 갈등 사이 이런 상호작용이 모든 전략의 핵심에 있다. 완전한 동의(어떤 분쟁도 없는)와 완전한 통제(일방의 지배에 의해 질식된 분쟁)를 양 극단으로 하는 스펙트럼이 있다. 실제에서 선택은 회유나 강압의 정도에 따라서 중간에 있게 된다. 더 우월한 힘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식은 흔히 연합을 형성하거나 적의 연합을 깨는 것이기 때문에, 전략은 타협과 협상을 포함하는 경향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왜 전략이 과학이 아니라 예술인지 설명한다. 상황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며, 따라서 예측할 수 없을 때 전략이 작동한다(프리드만, 2013).

 

아래로부터의 전략 Strategy from Below

약자들은 바라는 목적과 가용 자원 사이 간극이 크기 때문에 이들에게 전략이 가장 도전적이다. 무엇보다 약자들은 지배자들의 억압을 부르지 않는 방식으로 지원을 동원해야 했다.

또한 직업적 혁명가들은 막 싹 틔운 대중의 열망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잘못된 것을 분석하고 모든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전망을 제시하는 사상가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좋은 사회를 정의하는 것과 어떻게 그것이 자연스러운 대중 운동의 결과가 될 것인가를 설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더 나아가 혁명이 어떻게 원하는 결과로 나아갈 것인가를 설명하는, 지적으로 일관된 이야기를 개발하는 것과 혁명의 순간이 왔을 때 그 노선을 따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비전 vs. 가능성/현실성. 경로 제시 vs. 행동 참여.

아래로부터의 전략, 즉 사회운동의 전략은 군사분야나 경영분야의 전략과 달리 리더십과 관련해서도 더 큰 난제를 가지고 있었다. 군사분야나 경영분야의 리더십은 본질적으로 하향식이다. 그러나 사회운동의 리더십에 관련해서는 두 개의 극단적인 집단으로 나뉘어져 있다. 대중이 올바른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도록 촉진할 수 있을 뿐이라는 순수주의자들과 자기들이 놓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는 변화의 전위들. 계급 의식 그리고 리더십과 관련해 한 극단에 섰던 레닌과 볼셰비키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오랫동안 좌익의 전략 담론을 바꾸었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는 다른 극단의 부활을 가져 왔다. 리더십에 대한 환상(romance of leadership)도 문제지만 리더십 부재의 한계에 대해 눈 감는 것도 문제이다. 이 또한 동태적으로 균형을 잡아야 할 문제이다.

 

책의 장점

이 책은 전략의 기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군사에서 사회운동, 경영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전략과 그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다룰 뿐 아니라, 합리적 선택부터 인지이론, 전략적 대본까지 주요 전략이론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전략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기 좋다. 군사나 미국 시민권 운동 등 잘 모르던 분야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사회운동이나 경영 등 이미 알던 분야에 대해 새롭게 살펴볼 기회도 되었다. 여러 분야간 비교를 통해 여러 측면에서 전략을 살펴보고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살펴 본다는 것은 특정 분야를 깊이 보기 어렵다는 것이기도 하고, 명쾌하게 정리하기 어렵다는 것이기도 하다. 분야별로 이해의 깊이 차이가 드러나기도 하고. 전략의 본질, 복합적 요소, 다면적 모습, 긴장과 한계를 서술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소 산만하다. 오히려 전략 경영의 문헌들, 특히 헨리 민쯔버그(Henry Minzberg)의 저작들이 더 명쾌하다.

전략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어서 자료를 찾다가, 당연히 원서보다 우리 말 번역본을 선호하는 까닭에 이 책을 비롯해 몇몇 책을 알게 되었다. 번역본이 없었다면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고, 어마무시한 분량(우리말 번역본 1권 552쪽, 2권 844쪽, 영문판 768쪽)의 이 책을 결코 읽지 못했을 것이다. 번역자와 번역본 출판사에 감사하다.

그러나 번역본이 일반적으로 갖는 문제들을 이 책 또한 갖고 있다. 모호하거나 잘못 번역된 부분들이 있다. 적지 않은 부분에서 영문 원서의 해당 부분을 찾아 직접 읽고 확인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야 번역본을 읽었을 때 이해되지 않거나 의아했던 부분들의 의미가 명확해졌다. 이런 점에서는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기에 쉽지 않을 것이다.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