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산업

산업통상자원부의 미래차 생태계 전환 방안은 성공할 수 있을까?

바람2010 2018. 12. 25. 12:51

1834년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앤더슨이 발명한 최초의 비충전 배터리 전기차 (사진 중앙포토 https://news.joins.com/article/20512951)

1881년 프랑스의 트루베(Gustave Trouvé)가 만든, 최초의 충전식 배터리 전기자동차 (그림 https://www.upsbatterycenter.com/blog/gustave-trouve-electric-tricycle/)

지난 12 18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자동차 부품산업 활력제고 방안’(첨부 참조)을 발표하였다. 완성사가 아니라 부품사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 미래자동차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지만, 그 내용을 살펴 보면 자동차산업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발표 방안은 전체적으로는 무난하고 상식적인 수준- 산업정책 없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고 판단되지만, 미래차 관련해서는 현실성이 없는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1. 우리 부품산업 생태계의 구조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③ 중소ㆍ중견기업의 미래차 시장 진입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글로벌 미래차 시장은 IT기업 참여, 완성차-IT기업 제휴 등 경쟁구도 변화하고 있는 반면, 우리 자동차산업은 Player 다양성ㆍ시장역동성이 낮은, 완성차 중심의 폐쇄적 구도이기 때문에 중소ㆍ중견기업이 위탁 생산ㆍ직접 판매 등 다양한 형태로 미래차 시장에 진입하여 New Player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앞뒤가 전혀 안 맞는 이야기이다. 글로벌 미래차 시장에서 IT기업이 중요하다고 판단하면 국내 자동차산업에서도 IT기업의 역할이 커지도록 지원하겠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왜 중소ㆍ중견기업을 New Player-새로운 완성사? 조립전문회사? 판매 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는 결론이 나오는가? 자동차산업 선진국 중에 어느 나라가 이런 정책을 내세우는가?

 

2. 미래차 핵심부품 개발 등에 2조원을 투자, 미래차 전환에 막막함을 느끼는 중소ㆍ중견기업 지원 R&D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한다. 훌륭한 생각이다. 그러나 현실성에 의문이 간다. R&D 프로그램을 누가 수행하는 것인가? 제시하고 있는 미래차 기술개발 주요 내용을 하나씩 살펴 보자.

 

1) 전기차는 주행거리 향상(400→600km), 충전시간 저감(200→400kW)과 함께 핵심부품 기술 고도화 추진 (5천억원 규모 예비타당성조사 진행 중)

전기차 항속거리(주행거리가 아니라 항속거리다. 주행거리는 주행한 거리이고 1회 충전으로 주행가능한 거리는 항속거리이다.)는 배터리 성능(용량, 효율성, 관리기술)과 차량 중량에 의해 결정된다. 현재 전기차에 사용되는 리튬 이온 밧데리는 성능 한계점에 거의 도달해 있으며, 배터리 관리 기술도 테슬라를 제외하면 유사한 수준이고 개선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항속거리를 늘리는 가장 쉬운 방안은 배터리 용량을 늘리는 것이지만, 이는 원가 상승과 중량 증가를 동반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배터리 용량 증대나 성능 향상을 통해 항속거리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전기차는 경량화가 중요하고 이를 위해 내연기관차에 비해 경량 소재 사용 비율이 높다. 결국 전기자 항속 거리 증대를 위해서는 CFRP, AL 등 소재 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는데, 국내 중소ㆍ중견기업 중에 유망한 기업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정부 주도로 기술을 개발해 전파할 것인가?

 

2) 수소차는 16 km인 내구성을 50 km로 확대하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차 기술력을 확보할 계획 (3천억원 규모 예타 중)

현재 수소차 확산의 가장 큰 장애는 충전 인프라 미비와 높은 차량 가격인데, 내구성을 50 km로 확대하는 게 왜 중요한가?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차 기술력 확보의 주체가 누구인가?

 

3) 자율주행차에는 1조원을 투입, 부품기업들이 전자ㆍ통신ㆍIT 융합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 (‘19.1분기 예타 추진 예정)

부품기업들이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것인지, 기술을 개발해서 지원하겠다는 것인지? 자율주행도 결국 인지-판단-실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센서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이 핵심인데 국내 중소ㆍ중견 부품기업 중에 자금을 지원해주면 이를 개발할 수 있는 기업이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정부 주도로 개발, 전파하겠다는 것인지?

 

4) 미래차 개발의 핵심인 고급인력 공급을 위하여 ‘22년까지 석ㆍ박사급 전문인력 1천명 이상 양성

미래차 개발의 핵심인 고급인력은 어떤 분야를 전공한 석ㆍ박사급 전문인력이어야 하는가? 자동차는 기계, 소재, 전기전자, IT 등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이 협력해서 개발하는데, 이와 별개로 미래차 전공(?)을 개설하는 것인가? 그 전공에서는 무엇을 배우게 되나? 내년(’19)에 당장 개설해도 첫 석사 졸업생은 ‘21에 나오는데, ‘22년까지 1천 명 양성?

 

3. (제조전문 위탁생산) 중소ㆍ중견기업이 완성차를 위탁 받아 생산할 경우, 재정ㆍ금융ㆍ기술개발 등을 다각적으로 지원.  *고용지원금, 지방투자촉진 보조금 등 지원 (‘19년 지원기준 개정)

소재, 부품, 제품 개발, 생산, 판매까지 완결적인 산업구조를 갖춘 대한민국의 정부가 위탁생산을 산업 정책으로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 인건비만 싸면 되는 게 아니다. 위탁 생산 전문 기업으로 지속가능성이 있으려면 수탁 능력과 생산 능력이 있어야 한다.

 

1) 수탁 능력

국내 자동차산업은 이미 생산설비 과잉이고, 국내 생산 규모는 확대되기 어렵다. 해외 자동차 회사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은 해외 생산기지로서 입지가 적합하지 않다. 내수 시장이 큰 것도 아니고 수출기지로 활용하기도 마땅하지 않다. 어느 완성사에서 수탁을 받을 것인가? 독자 생존 능력이 없어서 수탁 받지 못하면 문 닫아야 하는 기업을 정책적으로 키우겠다는 것인가?

 

2) 생산 능력

자동차 생산은 자본집약적이면서 노동집약적이다. 파워트레인 공장과 프레스 공장이 없는 단순 조립 공장도 차체 공장과 도장 공장, 조립 라인을 갖추어야 한다. 이런 자본 투자는 중소ㆍ중견기업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특정 완성사의 하청 공장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독자적인 생산 기술과 생산 관리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걸 어떻게 갖출 수 있을까? 기술개발을 누가 지원한다는 말인가? 정부가?

 

4. (전기버스) 민간투자를 통해 전기버스 전문기업의 양산ㆍ경쟁력 향상을 지원하는 지자체-민간펀드-버스업체 간 협업모델 창출하여 비즈니스 모델이 검증될 경우 전국 확산

【 전기버스 선도 프로젝트()

(지자체) 여객운수회사(버스 운영)가 노후 경유버스를 친환경 전기버스로 대규모 교체토록 하는 로드맵을 마련  * S시 사례 : 1천대 전기버스 도입(‘19~’22) 등 친환경 대중교통 전환 계획 수립

(민간투자사) 운수회사에 구매자금 지원 (초기 구매비용 부담 완화)

(정부) 지자체로 구매보조금 배정, 전기버스 충전요금 할인, 전기버스 취득세 감면 확대 등을 지원

(전기버스 제조회사) 대규모 물량 생산으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여 가격 인하와 일감 확보, 지역 내 일자리도 창출 가능

대량으로 판매되어야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서울시(1천대 전기버스 도입, ‘19~’22)가 최대 판매처일 것이고 연 평균 250대이며, 그 후에는 수요가 불확실하다. 4년마다 버스를 교체하지는 않을 테니. 게다가 같은 발표문에 미세먼지 저감효과가 뛰어난 수소버스도 ‘22년까지 2천대(누적)를 보급하겠다고 되어 있다. 어디에 대량으로 판매할 것인가?

그리고 대량 생산하려면 이에 필요한 자본 투자를 해야 한다. 게다가 고가의 고전압 배터리로 인해 현재 전기차는 적자를 보면서 팔고 있다. 어떻게 사업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인가?

 

5. (전기차) 중소ㆍ중견기업이 전기차를 직접 개발-판매할 수 있도록, R&D에 필요한 전기차 플랫폼을 개발ㆍ공개(‘19~’21, 340억원)하고, 해외진출도 적극 지원할 계획

‘R&D에 필요한 전기차 플랫폼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자동차 플랫폼이 만족시켜야 할 것은 주행성능만이 아니다. 플랫폼은 충돌안전성능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자동차는 대표적인 통합형(integral) 제품이다. 모듈이나 부품을 단순히 조합한다고 해서 총합 성능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동차는 개발 단계부터 제조성을 고려해야 하고, 내구성과 안전성도 확보해야 한다. 공학 지식만이 아니라 개발 경험이 중요하다. 여러 기업들이 공용할 전기차 플랫폼을 누가 만든다는 것인가?

정부가 지원할 중소ㆍ중견기업은 공용 전기차 플랫폼을 활용해 독자적으로 자기 회사의 차체(body)를 만들어야 한다. 동네 전기차(Neighborhood Electric Vehicle: NEV), 저속 전기차, 각종 안전법규를 면제 받는 차, 저렴한 비용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쾌적하거나 안전하지는 않은 틈새 시장용 차가 아니면 이도 그리 간단치 않다.

완성사에서 신차 하나 개발하는데 3~4천 억 정도 든다. 중소ㆍ중견기업이 개발할 수 있는 전기차는 결국 니치 시장용, 저속 전기차 정도이고 우리 나라에도 이미 이런 제품들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는 기업들이 있다. 이 기업들 외에 더 많은 전기차 업체들을 키우겠다는 것인지? 이미 있는 업체를 지원하는 게 낫지 않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산업정책이 없다는 비판을 아프게 받아들인다고 했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니 다행이다. 상황은 엄혹한데 역량이 부족하면 어찌 해야 할까? 한편으로는 역량을 키우는 노력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어떻게 역량을 키울 것인지 무척 궁금하다. 장기적으로는 당장의 정책 보다 이게 더 중요하다. 자동차산업 패러다임 전환은 단기 승부가 아니고, 몇몇 기업에만 맡겨서 될 문제가 아니기에. 그리고 당장의 정책은 현재 역량으로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게 옳다. 감당할 수 없는 의지 과잉은 후과를 낳기 마련이고, 그러면 이후 대응은 더 힘들어진다. 초라해 보여도 할 수 없다. 그것이 현재 실력이다.

 

201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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