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너희는 고립되었다”

바람2010 2011. 1. 10. 20:28

기륭전자비정규직투쟁 1890일 헌정사진집의 제목이기도 하고, 이 사진집을 기획한 경동 시인이 쓴 시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언제나처럼 제일 먼저 표지와 제목에 눈이 갑니다.

너희는 고립되었다

여러 가시 생각이 떠 오릅니다.

 

1.

사진집 앞표지 사진은 감옥 문보다 더 굳게 닫혀 있는 철문 아래 빈틈으로 누군가 손을 내민 사진입니다.
(
아래 포스터 사진 참조)

 

고립된 이가 내민 손,

저 세상에서 이 세상을 향해 내민 손,

누군가 잡아주길 바라며 내민 손,

철문 아래로 간신히 내민 손,

그러나, 힘차게 내민 손 … .

 

낮고 좁은 틈 사이로 손을 내밀기 위해 그()는 아마 바닥에 바짝 엎드려야 했을 것입니다.

가장 낮은 자세를 취해야 했을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내민 손입니다.

 

그러나, 포스터 속에 보이는 우리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접혀진 사진집 앞표지에는 우리의 모습이 아예 가려져 있습니다.

 

2.

사진집 제목은 너희는 고립되었다입니다.

상념의 시작은 열쇠말인 너희그리고 고립입니다.

 

너희우리와 분리된 집단입니다.

너희우리는 대치/대립합니다.

 

언제나 고립되는 것은 소수/약자이고, ‘고립시키는 것은 다수/강자입니다.

고립은 또한 단절이고, 고통입니다.

그래서, ‘고립을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예 소멸되든가, 주류로 흡수/해체됩니다.

 

너희는 고립되었다는 선언은 최후 통첩입니다.

소멸이냐, 투항이냐선택하라는 강요입니다.

 

그런데, 누가 고립된 걸까요?

불행히도 우리 노동자들입니다.

다수이지만,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

그 중에서도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 … .

 

고립이라는 말을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포위 고립 섬멸

민주화는 되었지만, 아직 군인 출신 대통령이 건재하던 시기에 한 대학생이 입고 있던 반팔티에 선명하게 쓰여져 있던 문구입니다.

포위 고립 섬멸

그 강력한 간결함에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누구를 포위하고 고립시키고 섬멸하겠다는 걸까?

당시에는 명확했습니다.

이제는 거꾸로 우리를 향해 너희가 외치는 것 같습니다.

포위 고립 섬멸

 

사진집이, 시가 외치는 너희는 고립되었다는 외침은

거꾸로 너희를 고립시키겠다는 선언입니다.

현재의 고립을 벗어나겠다는 의지입니다.

 

3.

사진집에 실린 사진들은 흑백입니다.

아바타로 대표되는 총천연색 3D 영화가 세상을 흔들어 이제 주류가 되어 가는 지금,

곧 안방에서도 3D TV를 보게 될 것이라 이야기하는 지금,

우리 노동자들의 모습은 여전히 평면이고, 흑백입니다.

 

그러나, 그 흑백 평면 사진에 3D로도, 아니 어떤 고차원으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 삶의 이야기는 그 긴 시간 포기하지 않고, 쉼없이 투쟁해왔던 기륭 노동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들과 연대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훌륭하게 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사진집에는 한 여성 노동자의 곱디 고운 옛모습이 담겨 있고,

새로운 인생의 출발이라는 결혼과 아이들의 탄생도 담겨 있습니다.

기괴하게 생긴 길고 높은 탑도 있고, 미약한 인간의 모습도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을 담았다는 의미,

수익금 전액을 비정규 투쟁기금으로 쓰겠다는 의도만 훌륭한 게 아닙니다.

이 사진집에 담겨진 사진들도 훌륭하고, 시들도, 글들도 훌륭합니다.

이 사진집 한 권을 통해 그 훌륭한 의미와 의도에 동참하게도 되지만,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과 삶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해보게도 됩니다.

 

아무쪼록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가져 보시길 … .

 

2011 1 10일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