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는 누구인가?
주체에게 존재에 대한 질문은 제1의 질문이다. 당연히 엔지니어에게도 그렇다.
내가 예전에 알고 있던 엔지니어의 기원은 엔진과 관련되어 있었다. “Engineering은 본래 Engine을 다루는 일이었고, Engineer는 Engine을 다루는 사람, 즉 Engineering을 하는 사람이었다.”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의 동력기관이었으니 충분한 역사적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럴듯한 이야기일 뿐 사실과는 달랐다. 최초로 산업혁명이 발생했던 영국에서도 기계공학보다 토목공학이, 기계 엔지니어보다 토목 엔지니어가 선행했다. 그렇다면 엔지니어는 언제 등장했고, 어떤 존재일까?
엔지니어들의 중요성에 비해 많이 부족하지만 엔지니어에 대한 여러 연구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국내 연구 중 하나로 김덕호 등이 지난 2010~2012년 진행한 “근대 엔지니어의 탄생과 성장: 국가별 스타일 비교연구”가 있다. 이 연구 결과에 기반해 [근대 엔지니어의 탄생](김덕호 등, 2013)과 [근대 엔지니어의 성장](이내주 등, 2014)이라는 두 권의 책이 발간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근대 산업 선진국이었던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을 비교 사례로 하여 [근대 엔지니어의 탄생]은 1차 산업혁명 시기인 18세기 후반~1870년대 토목공학과 기계공학 분야를 중심으로, [근대 엔지니어의 성장]은 1870년대 이후 2차 산업혁명 시기 ‘신산업 new industry’인 전기공학과 화학공학분야를 중심으로 다룬다.
“근대 엔지니어는 생산관계의 변혁을 가능케 한 기술 혁신을 이끌어 근대 산업 사회의 물질적 토대를 만들었고, 기술 혁신 과정을 통해 산업 사회의 새로운 가치인 합리주의와 실용주의를 추구했으며, 산업 사회의 역할 모델로 기능했다.”
엔지니어는 근대를 만든 주요 세력 중 하나이지만, 역사적으로 근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점차 공학 교육이 체계화되고 엔지니어 집단의 전문화가 진행되었으며, 공학 교육의 학습 여부가 위계의 주요 기준이라는 점은 일반적이지만, ‘근대 엔지니어’의 탄생과 성장은 각국의 산업화 정도, 국가 역할의 차이, 사회 계층 구조의 역사적·문화적 차이 등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그리고 엔지니어, 경영자, 노동자 사이 역학 관계와 경합도 엔지니어의 위상과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엔지니어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더 추천할 만한 책은 김덕호 등의 연구(2010~2012년)에 참여한 다수 연구자가 함께 번역한 [현대 엔지니어와 산업자본주의 – 비교사 관점에서 본 엔지니어의 세계](메익신스 & 스미스 대표 저술, 1996. 김덕호 등 옮김, 2017. Meiksins & Smith, 1996. Engineering Labour – Technical Workers in Comparative Perspective)이다. 관점과 문제의식이 분명하고, 내용과 결론 또한 훌륭하다. 출간된 지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탐독할 만하다.
저자들은 엔지니어 및 자본주의와 연관된 주요 논쟁을 1.경영 문헌에서 작업을 조직하는 ‘모범 사례’ 탐색, 2. 자본주의 발전 단계에 관한 이론적 분석 발전 시도, 3.‘새로운 중간 계급’의 특성과 중요도 논의로 나누어 정리한다. 사실 이 주제들은 한때 큰 화두였으며, 나도 공부한 적이 있고, 지금도 사회과학 대학원에 가면 배우게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이 주제들에 대해 오랜만에 다시 생각하고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나는 엔지니어이면서도 이 주제들을 엔지니어와 연관 지어 생각하지는 못했다.
저자들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이렇다.
1. 노동 조직화 일반과 특히 기술 노동의 조직화에서 볼 수 있는 국가적 차이의 기원은 무엇인가?
2. 가장 ‘진보한‘ 사회와 가장 ‘진보한‘ 기술/산업이 나머지 자본주의 사회에 전형적인 기술 노동 조직화 방식을 보여주는가? 즉 역사적 수렴이 존재하는가?
3. 기술 노동 technical work 혹은 노동 work을 일반적으로 조직화하는 ‘모범 사례’ 같은 것이 존재하는가?
4. 표면적으로 가장 ‘진보한’ 기술 노동 조직 방식은 전통적 자본주의의 사회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 ‘단계’ 이론의 핵심은 새로운 발달(자동화, 유연 전문화, 노동의 새로운 분업, 포스트포드주의)이 노동과 자본 사이 통합 기제를 확립함으로써, 혹은 생산 과정 내에서 기술 노동자의 수와 중요성을 늘림으로써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을 극복한다는 견해임.)
5. 상이한 자본주의 사회 속 엔지니어를 조사함으로써 우리는 현재의 계급구조에 관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1부 사례 연구에서는 6개국 -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일본의 엔지니어에 관한 역사적 사례 연구를 한다. 특정 국가에서 공학의 발달을 개괄하고, 특히 계급 구조에서 엔지니어의 지위, 엔지니어와 국가의 관계, 엔지니어 조직, 공학 훈련과 경제 발전에서 엔지니어의 역할에 초점을 둔다.
2부는 이론적 분석으로 ‘8장 기술 노동 조직에 대한 비교사적 조망’과 ‘9장 엔지니어와 수렴’으로 구성된다. 모두 탁월한 이론적 분석이지만, 특히 8장에서 제시하는 기술직 노동자의 형성과 조직에 대한 네 가지 모델은 훌륭하다.
그림 1 기술직 노동자의 형성과 조직의 네 가지 모델
유형 | 채용 | 지위 | 노동시장 | 조직 형태 |
장인형 | 도제 제도 | 육체노동자에 근접 | 노동시장 안팎 모두 | 직종별 노조 |
관리형 | 정규 교육 | 관리자에 근접 | 노동시장 안팎 모두 | 취약한 전문직 단체 |
서열형 | 자격증 등급 | 지위에 따라 다름 | 지위에 따라 다양 | 지위에 따라 다양 (전문직 협회에서 노조까지) |
기업 중심형 | 정규 교육 | 노동자와 관리자 양쪽 모두 | 기업별 특수성 (관리자가 될 수 있음) | 기업 노조 (직종별 노조 없음) |
이 글에서 소개한 책 모두 몇 년 전에 산 것이긴 하지만, 내가 살 때도 초판 1쇄였다. 좋은 책이라고 많이 팔리는 거 아니고, 많이 팔린다고 좋은 책은 아니라지만, 씁쓸하다. 엔지니어가 중요하다, 우수한 인재들이 이공계를 기피해서 걱정이다, 엔지니어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 … 엔지니어의 ‘효용’, ‘경쟁력’, ‘활용’에 대한 관심에 그치지 않고 ‘존재’에 대한 온전한 관심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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