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연구원 조성재 선임연구위원이 주도한 이 연구는 제조업 엔지니어 직종에 대한 포괄적 분석이며, 이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이다. 이 연구는 엔지니어 노동시장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의 토대 위에서 노동수요 측 요인과 노동공급 측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살핀 노동경제학적 접근을 제도적, 경영학적, 사회학적 접근으로 보완한 다학제적 접근이며, 양적 분석과 질적 분석, 통계적 분석과 사례 분석, 그리고 조직 수준(민간기술연구소) 분석과 개인 수준 분석을 병행하고, 노사관계까지 살핌으로써 엔지니어와 관련한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고자 했다. 이후 엔지니어 연구와 엔지니어 정책에 기초가 될 귀중한 연구를 수행한 연구진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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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더 연구하고 정책적으로 고민해야 할 몇 가지 쟁점을 정리해 본다.
- 한국 경제는 글로벌 경제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고, 주요 산업과 기업들은 글로벌 차원에서 경쟁하고 있다. 여전히 국가 효과가 중요하긴 하지만, 지배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업종과 기계, 전자, SW, 소재, 가공 등 전공별로 구분해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이에 근거해 정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 “우리나라는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는 세계 2위이며, 경제활동인구 천 명당 연구원 수는 세계 1위”이다. 상대적으로 보면 연구개발 투자도 많고, 엔지니어도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주요 산업의 경쟁국가가 미국과 중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절대 규모에서는 대단히 부족하다. 국가별 분업보다 내재화, 수직통합이 강화되는 시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은 국가 수준의 산업구성과도 연관되어 도출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걸 다 잘해야 하나, 다 잘 할 수 있는가? 핵심 고리는 어디인가?
- 학력과 학벌에 따른 위계, 기업별 격차가 큰 내부노동시장, 경력직 채용과 이직이 활성화되는, 외부노동시장의 확대가 혼재된 상황에서 우리의 길은 무엇일까? 국가 수준의 모델이 가능할까? 업종별, 전공별, 직무별 모델이 필요하지 않을까?
- “부문별 수급 불균형은 위계적 엔지니어 노동시장, 혹은 외부노동시장의 계층화 현상과 커다란 임금격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다른 직종과 마찬가지로 엔지니어 부문에서도 임금격차 축소를 통해 노동시장의 통합성을 제고”해야 한다.
취업난과 구직난이 공존하는 것은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엔지니어 노동시장의 상향평준화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1) 일부에서 주장하는 성과연봉제는 답이 될 수 없다. 어떻게 포장하든 성과연봉제는 임금 격차를 확대하겠다는 것이고, '평가의 공정성' 시비와 '단기 성과주의', '협업 대신 경쟁 조장'이라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기업 간 격차를 더 확대할 것이다. 지난 수년 동안 현대차그룹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계열사 간 차별화를 보라.
기본임금체계는 안정성을 기본으로 하고, 초인재들이나 탁월한 성과에 대해 별도로 확실히 보상하는 방안이 더 타당하다.
2) 기업 인건비 부담을 고려해 상위 임금을 깎아서 격차를 줄이겠다는 것도 마땅치 않다. 한국 엔지니어의 가성비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동안 엔지니어를 갈아 넣어 성장한, ‘현대판 에밀레종’ 아니었나? 위를 깎는 게 아니라 아래를 높이는 상향평준화가 필요하다.
3) 엔지니어로서 숙련 획득과 업무 수행은 상당히 고되다. 그 노력을 ‘재테크’에 쓰면 훨씬 더 큰 경제적 보상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이 이른바 ‘합리적 선택’ 아닌가? 기업의 손쉬운 인사정책 - '돈으로 통제'하는 것이, 정부 정책과 사회 흐름이 무엇을 낳고 있는지 봐야 한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 합리적인 수준의 임금을 전제로 내재적 만족 향상, 성장, 자부심 고취를 추구해야 한다.
4) 노동시간 상한제가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주40시간도 몰입해서 일하면 짧지 않은 시간이다. (게다가 이 연구의 조사에 따르면, 순수 연구업무의 비중은 평균 53%에 불과하다(206).) 주 52시간이면 30%까지 초과노동을 하게 된다. 유연근무제를 시행하면 유연성은 더 커진다. 노동시간을 연장할 게 아니라 경영이 유능해져야 한다.
5) 고용과 임금 안정성을 더 높여야 한다. 입사해서 20년 정도 일하고 나면 이직도 어렵고, 가성비 떨어지는 퇴물 취급받는 직업, 그 동안의 기여는 어디 가고 정년 가까워졌다고 임금이 깎이는 일자리를 누가 선호하나? 2000년대 중반만해도 백발의 독일 엔지니어와 일본 기술자를 보며 '우리의 바람직한 미래'라고 선망했었다. 현재 불고 있는 의대 광풍, 전문가 선호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 노동의 가치가 경제적으로만 평가되고, ‘노동을 통한 해방’은 사라지고, ‘노동으로부터의 해방’만 추구되는 사회에서 엔지니어의 노동, 엔지니어의 자기 정체성 확립은 어떻게 가능한가?
- “무노조 기업에서 노조가 설립되면 가입하겠다는 개인들의 의향은 10년 전 61%에서 금번 조사에서 75%로 높아졌다.” 엔지니어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대표되길 바란다. 국가와 기업에서 노동조합을 배제할 것이라 아니라 노동조합과 함께 노동시장의 상향평준화, 엔지니어의 정체성 확립, 자부심 고양을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 당사자들을 주체로 인정하고 스스로 과제를 해결할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초기업 엔지니어노조의 등장과 노사관계의 발전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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