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생각, 노동자 이야기

지금 우리에게 지역지부 모델이 필요한가?

바람2010 2020. 9. 26. 10:08

20090107 공공기관 구조조정저지 언론악법저지 이명박정권 심판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참석하러 가는 임원 사무처. 대영빌딩에서 국회 앞으로

금속노조 산별노조발전전략위원회 기획회의(2020.9.25.)에 제출한 글이고,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쓴 글입니다. 쓴 글로는 부족해서 발제를 시작하면서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먼저 했습니다.

 

1. 전략에도 위계가 있다. 이 지역지부 활동 모델 논의는 어느 수준의 전략 논의인가? 금속노조 전체의 전략, 즉 최상위 전략인가, 아니면 금속노조의 중요한 일부로서 지역의 전략, 즉 하위 전략인가? 지역지부 활동의 중요성과 전략의 필요성에 동의하지만, 최상위 전략은 아니어야 하고, 최상위 전략에 정렬된 하위 전략이어야 한다.

 

2. 사업장도 중요하다. 사업장은 노동자들의 노동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고 노동자들의 사회적 관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간이다. 기업별 의식을 넘어선다는 명분으로 사업장의 의미를 폄훼하거나 사업장으로부터 퇴각이나 사업장 교섭을 폐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3. 산별노조의 교섭은 산별 교섭과 사업장 교섭으로 이루어진다. 중앙교섭은 최정상 조직 즉, 총연맹이 하는 것이고, 금속노조의 중앙교섭은 잘못된 개념, 용어 사용이다. 산별 교섭은 상황에 따라 전국 수준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지역 수준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현재의 3중 교섭은 지양되어야 하며, 전국 수준의 산별 교섭을 지향하는 것이 타당하다.

 

4. 조직이 반드시 하나의 질서로만 운영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에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활용과 함께 탐색을 병행하는 양손잡이 조직도 있고, 종축과 횡축을 교차시켜 운영하는 행렬/매트릭스 조직도 있다. 산별노조로서 금속노조는 산업과 지역을 두 축으로 하는 조직을 지향해야 한다. 주객관적인 조건을 고려하면, 산업이 중심축이 되고 지역이 보조축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지역지부 모델이 필요한가?

지금 우리에게 지역지부 모델이 필요한가 20200925 회의.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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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19. 전문위원 박근태

 

우리의 지향은 여전히 산별노조인가?

금속노조 산별노조발전전략위원회(이하 전략위) 초기에 근본적인 노선 검토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우리의 지향이 산별노조인지 일반노조인지부터 검토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의미 있는 문제제기였지만, 나는 반대했다. 한편으로는 전략위가 노선 검토를 할 만한 역량이 안된다는 현실적 이유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금속노조의 지향은 여전히 산별노조일 수밖에 없다는 근본적 판단 때문이었다.

금속노조가 가진 가장 큰 권력 자원은 무엇인가? 완성사를 비롯한 자동차산업과 일부 제조업의 핵심 사업장을 강하게 조직하고 있다는 것, 아직은 힘이 남아 있는 작업장 교섭력이다. 그 권력 자원을 버리고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는가? 그것이 지혜로운 일인가? 다른 길을 가더라도 그 권력 자원을 활용해서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

산별노조를 지향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산업적 차원에서 행위자가 된다는 것이고, 조직과 활동 등 기본 운영원리를 산별노조답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직화를 하더라도 일반노조를 지향하는 조직화와 산별노조를 지향하는 조직화는 달라야 하고,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지난 해 조직화 전략 논의에서 주장했던 이야기 중 하나이다.

 

지금 우리에게 모델이 필요한가?

모델이란 무엇인가? 필요에 따라 단순화시키고 이상화시킨 것이고, (동적이라 하더라도 주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는) 안정된 상태를 전제로 한다. 지금 우리에게 그것이 가능한가? 필요한가? 오히려 그 반대 아닐까? 현실의 역동적 변화, 산업의 전환과 촛불 항쟁으로 열린 기회의 창을 활용해 발전하기 위한 운동이 필요한 것 아닌가?

검증된 모델이란 과거의 경험에 기반한 것이다. 모델의 유용함과 함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위험성이다. 모델은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부분을 무시하고 잘라낸다. 그게 모델을 만드는 모델링이다. 과거의 모델이 정합성을 잃고 더 이상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기존 모델을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하는 주체의 미숙함을 확인하고 싶은 것인가? 후자라면 전략위에서 논의할 이유가 없고, 전자라면 현재 새로운 모델이 필요한지, 가능한지부터 따져 봐야 한다.

그리고 전방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위로부터의 접근만이 아니라, 지역지부, 그리고 지회와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들어보려는 노력, 실천 경험은 물론 이론도 살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당연히 단기간에 가능하지 않다. 감각에 그치지 않고 엄밀함을 추구하는 치열함이 필요하다.

(사실 나는 금속노조가 매년 전략을 하나씩 만들어낼 수 있다는 발상이정말 감당이 안된다.)

 

지역의 역할은 무엇일 수 있을까?

지역 운동에 대해서 역사적, 이론적 검토, 사례 분석, 실천적 경험 모두 일천한 상태에서 부족한 생각을 정리해 보면, 세 가지를 검토할 수 있을 것 같다.

 

1) 전달 벨트

금속노조 중앙과 사업장 사이를 연결하는 전달 벨트.

지금은 하향 전달력이 상향 전달력보다 큰 상황이고, 두 전달력 모두 약화되고 있다.

행정적 역할이 주. 따라서 지역지부의 역량보다 조직의 규율, 기풍이 더 중요하다.

전략위에서 특별히 검토할 필요가 없다.

 

2) 지역 산별

한때 우리는 지역에 기반한 대산별을 꿈꿔 왔다. 지금 시점에서 그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주체의 의지와 역량

(4만 금속 시절을 제외하고) 산별노조에 대한 열망이 가장 컸던 산별완성대대에서조차 완성사의 지역지부 편재에 실패했고, 그 이후 동력은 계속 줄어왔다. 역전시킬 수 있는가? 역전시키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가? 규약과 규정에도 어긋나는 기업지부를 새로이 인정하지 않았던가?

 

산업의 구조

지역 산별에 유리한 조건은 산업의 구조와 노동시장이 지역 수준에서 상당한 완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 수준 노사관계의 기반이 있어야 한다.

이미 글로벌 시대이고,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 소싱이 완화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리쇼어링이 아니라 글로벌 수준에서 복사 발주, 지역(region) 수준에서 산업 구조 완결성 제고로 이어질 것이다.

국내에서 전국 수준으로 조직된 산업이 지역화될 가능성은 없다. 주요 제조 기업들은 여러 지역에 사업장을 가지고 있고 지역적 동질성보다 기업 내 동질성이 높다. 기업 내 노사관계가 가장 강한 규정력을 갖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지역 산별이 가능한가? 설사 가능하더라도 지역 산별을 지향하고 싶으면 지역 편제를 산업의 결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행정 구역 단위, 광역 단위가 아니라….

 

3) 지역 사회연대노조

지역 차원에서는 산별노조로서의 역할보다 사회연대노조로서의 역할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속노조는 전국과 사업장으로 연결될 산업적 질서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사회연대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활동하게 될 것이다.

 

금속노조의 지역지부가 전달 벨트 역할만 할 리는 없을 것이고, 전달 벨트 역할을 안 할 리도 없을 것이다. 전달 벨트가 가장 중요한 역할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운동조직으로서는 끝난 것이다.

결국 지역 산별과 지역 사회연대노조 중 어디에 중심을 둘 것인가이고, 하나에 중심을 둔다고 해서 다른 하나를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역지부의 구체적인 역할은 지역의 사정에 근거해야겠지만, 금속노조 차원에서 중심을 정해야 한다면 나는 지역 사회연대노조에 중점을 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산별노조와 사회운동노조라는 모순된 긴장을 감당할 수 있는, 더 정확히 말하면 산별노조 안에 사회운동노조의 유전자와 활동성을 품을 수 있는 유력한, 어쩌면 유일한 길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