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빵과 장미 Bread And Roses” 그리고 “노동에 대한 생각 The Thought of Work”

바람2010 2013. 6. 10. 21:57

 

켄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 Bread And Roses (2000년 작)”를 다시 보게 되었다. 한 학기 동안 John W. Budd [The Thought of Work]를 통해 노동이 얼마나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노동과 노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운 후에 보고 쓰는 감상문이니, 일반적인 접근 보다는 주요 등장 인물들에게 노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중심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마야에게 노동이란?

 

돈을 벌기 위해 멕시코에서 미국 국경을 넘어 불법 이민자가 된 마야가 처음 갖게 된 일(work)은 술집 여종업원이었다. 진한 화장을 하고서 거친 남성들의 희롱 속에 버텨야 하는 그 일(work)은 마야에게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social relation) 속에서 자유(freedom)가 아니라 종속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을 것이고, 자신의 정체성(identity)에 반하는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었을 것이며, 무엇보다 돈벌이를 위해 감내할 수 밖에 없는 비효용(disutility)이었을 것이다. 이 강요된 돌봄 노동(caring for others)은 위험한 국경 통과에 필요한 비용 마련을 위해 언니 로자(Rosa)가 술집 주인에게 선불로 받은 300불의 대가이었으며, 이 거래에서 마야는 탈인격화된 상품(commodity)에 지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는 형편없는 일자리(lousy work)”이지만, 언니 로자가 오랫동안 해왔고, 마야가 선망했던 청소부(Janitor) 일자리를 얻기 위해 언니 로자는 관리자 로페즈에게 성상납을 해야 했고, 마야는 그것도 모른 채 첫 월급을 바쳐야 했다. 형편없는 일자리(lousy work)”를 구하는 것 조차 자유 거래가 아니라, 철저한 권력관계 – ‘갑을 관계인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입게 된 유니폼의 효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청소부들을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게 만들어 주는 투명 망토가 되기도 하고, 근엄한 경비원의 제지 없이 건물에 들어갈 수 있는 신분증이 되기도 한다.

이제 갓 시작해 의욕만 앞서고 서툴기만한 마야에게 요령을 가르쳐주는 고참, 그리고 동료들은 마야가 낯선 미국에 와서 갖게 된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 사회적 관계이다.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 동료를 배신하고, 때로는 관리자 로페즈의 회유에도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해고되기도 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각을 통해 단결하고 투쟁하게 되고 마침내 승리를 쟁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마야도 동료들과 함께 계급의식(class consciousness), 계급적 정체성(class identity)를 자각하게 된다. 주유소 절도 사실이 드러나 멕시코로 강제추방되지만, 이제 마야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할 때의 마야가 아니라 새로운 마야가 되었고, 밀입국 중개인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언니와 헤어질 때 보여준 슬픔과 두려움의 얼굴이 아니라, 당당한 표정으로 떠나간다. 멕시코에서 시작될 그녀의 새로운 삶은 이전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로자에게 노동이란?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

이 영화에서도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인간적 존엄을 상징한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빵조차 부족해 장미는 생각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역시 Maslow의 욕구 5단계설이 맞는걸까?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5년이나 몸을 팔아야 했고, 커서는 남편을 위해, 또 동생의 취직을 위해 몸을 팔아야 했던, 그리고 하루 16시간의 고된 노동을 감당해야 했던, 주요 등장 인물 중 가장 가혹한 삶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던 그녀의 이름은 로자 Rosa, ‘장미이다. ‘장미라는 이름의 이 여성 노동자에게 노동이란 무엇보다 저주(curse)였을 것이다. 끝없는 자기 희생을 강요하는 가족에 대한 돌봄(caring), 생존을 위해 감수할 밖에 없는 비효용(disutility), 의료보험도 없이 고작 시급 5.75달러에 팔리는 싸구려 상품, 자유나 개인적 성취와는 거리가 먼, “언제나 우리보다 강한 지배자들에 의해 강요되는 복종, 이 모두가 그녀에게는 하나였고, 저주였다.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집으로 찾아온 샘에게 우리라고 말하지 말라며 단호하게 호통치지만, 청소부를 위한 노동조합 파티에 가족과 함께 참석하기도 하고, 여기서 쓰러진 남편을 치료하기 위해 동생 마야와 동료들을 배신하기도 하는 로자에게 이 모든 것은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고, 행복추구이다.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홀로 싸우는 그녀는 개인적 처지는 바꿀지언정 세상과 그 질서를 바꾸지는 못한다.

경찰에 연행된 동생 마야를 기다리면서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동료들의 외침에 차마 답하지 못하고, 동생 마야를 실은 채 떠나가는 호송차를 쫓아 뛰어가며 작별 인사를 고하는 그녀의 얼굴에 마침내 장미의 미소가 보인다. 이제 그녀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을 살 것이다.

 

샘에게 노동이란?

 

17년 전 시급 8.5불에 건강보험과 유급 병가까지 제공받았던 청소 노동자들에게 현재(1999)는 건강보험도, 유급 병가도 없이 시급 5.7불만 주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이것이 천사(Angel)’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 최대 청소용역업체가 저가 경쟁, 바닥을 향한 경쟁(race to the bottom)을 통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조합원인 청소노동자들은 가족까지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있다고, 그러니 단결해서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노동조합 직업 활동가 샘에게 노동은 직업 이상이다. 그것은 충분히 존중 받아야 할 것이고, 고귀한 것이다. 그래서 소외된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그의 활동은 밥벌이, 혹은 의례적인 업무 이상이다. 공동체와 다른 이들을 위한 봉사이고, 자기 실현이고, 정의를 위한 투쟁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노동은 굴레이기도 하다. 상류층, 힘 있는 자들을 상대로 한 그의 저돌적인 활동 방식이 그가 속한 조직 노동조합이 곤란을 겪게 하고 이로 인해 상사와 논쟁을 벌이는 장면에서 우리는 평범한 직장의 모습을 본다. 아니 직장 상사에 맞서 그렇게 당당하게 자기 소신을 주장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평범한 게 아닐 지도 모른다. 한때는 그리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던 모습이었는데.

 

루벤에게 노동이란?

 

3년 동안 조기 출근해 책을 베껴 쓰면서 공부해서 마침내 대학에 합격한 루벤은, 신분상승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단체행동에서도 빠지지만, 마야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만, 억울하게 해고된다. 마야가 주유소에서 훔친 돈으로 등록금을 내주어 대학에 가게 된 그는 동료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고 승리한다. 그에게 현재의 노동은 생존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감내해야 할 무엇이다. 마침내 변호사의 꿈을 이루고 신분상승을 이루었을 때, 그에게 노동은 어떻게 기억될까? 지워버리고 싶은, 아프고 어두운 경험? 인정하고 자신이 대변해야 할 소중한 것? 근대화 이후 학업을 통한 신분 상승의 신화가 넘쳐났던 우리 사회에는 수 많은 루벤들이 있지 않았던가? 이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신분 상승의 통로가 거의 막혀 버린 우리 사회이지만.

 

페레즈에게 노동이란?

 

마름의 전형을 보여주는 관리자 페레즈, 그에게 노동은 생존 수단을 넘어 권력이고 군림이고 자유일 것이다. 개인적 성취일 것이고 자기 자신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화면을 벗어나면, 자신이 관리하는 노동자들과 자신의 관계만 주로 드러나는 이 화면을 벗어나 지주와 대면할 때, ‘마름에게 노동은 어떤 것일까? 자신이 관리하는 노동자들이 느끼고 있는 노동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자신이 느끼게 되지 않을까? 미국 사회의 주류라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와 거리가 먼, 아마 남미 이주민일 것 같은 그이기에 더욱 간교하고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리라.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은 페레즈들이 있지 않은가?

 

화면 밖 이야기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정의(Justice for Janitors)” 운동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는 화면에서 보여주는 것 말고도 많은 이야기들이 얽혀 있다. 영화의 제목인 빵과 장미는 세계 여성의 날의 기원이 된 1908년 뉴욕 방직공장 여성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고, 1912년 메사추세츠주 로렌스의 방직공장 여성노동자들의 파업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노조 활동가 샘 역을 연기한 애드리언 브로디는 이 배역을 위해 노조에 가입하여 실제로 노동조합 활동을 경험하기도 했다고 한다. 주요 인물들을 제외한 배역들은 실제 청소노동자들이 출연했고, 이 영화가 끝난 후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여 성과를 얻었다고 한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도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부각되면서 노동조합이 조직되고 임금 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쟁취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청소노동자들에게 노동의 의미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빵과 장미그리고 노동에 대한 생각

 

켄 로치 감독의 다른 영화들처럼 이 영화도 심오한 주제를, 과도하게 무겁지 않게, 그러나 한 순간도 느슨해지거나 옆 길로 새지 않고 다룬다. 영화라는 인공적인 창작물이지만,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다루며, 단순해 보이지만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등장 인물도, 스토리도.

John W. Budd [The Thought of Work]는 노동에 대해 포괄적이고 종합적으로, 그리고  간결하고 쉽게 다루면서도 깊이와 균형을 잃지 않는다.

거장들의 작품들이라 통하는 걸까? 두 작품 모두 곱씹을수록 새로운 맛-의미를 느끼게 된다.

노동은 너무나 중요해서 당연시 될 수 없으며, 너무나 복합적이어서 한 가지 개념으로 축소될 수 없다 John W. Budd의 결론을 떠올리며 마친다.

 

Work is too important to take for granted,

but too complex to be reduced a single conceptualization

 

 

2012050802 The Thought of Work.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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