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보고서…

바람2010 2010. 9. 24. 15:30
    <델마와 루이스>라는 영화가 있다. 꽤 오래 된 영화인데, 그리고 꽤 유명한 영화인데, 최근에 EBS를 통해 처음으로 영화 전체를 보게 되었다.

    역시 잘 만든 영화이다. 델마를 연기한 지나 데이비스, 루이스를 연기한 수잔 서랜든, 훌륭한 배우의 훌륭한 연기이다. 지금도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감수성, 재미와 진지한 사회의식까지 지닌 훌륭한 영화이다. 양념이지만, 브래트 피트의 앳띤 모습을 보는 것도 솔솔한 재미이리라.

    아주 얌전한, 그래서 남편에게 억압받고 쥐어 살던 델마가 루이스와 같이 여행을 떠나면서 세상을 알게 되고 변해간다. 술집에서 난봉꾼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겁탈당할 뻔 한다. 이로 인해 루이스는 그 난봉꾼을 죽이게 되고 이들은 경찰에 쫓기는 도망자 신세가 된다. 며칠로 예정되었던 짧은 여행이 이제 끝없는 탈주로 변한다. 탈출구를 찾아, 희망을 찾아 달아나지만, 탈출구는, 꿈의 세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결국 땅을 박차고 날아가면서 영화는 끝난다. 탈출은 성공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실패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몇 가지 불편한(?), 어색한(?)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인물들에 대해 아쉬움이 든다.

    우선 델마가 너무 쉽게, 너무 극단적으로 변해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처음 본 난봉꾼과 즐기는 것은 그럴 수 있다 해도, 난봉꾼-낯선 남자에게 상처 받은 델마가 미끈하게 잘빠진 낯선 젊은이-제이디에게 다시 빠지게 되고, 하룻밤 사랑도 나눈다, 제이디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타고난 강도처럼, 능숙하게 가게를 턴다, 교통경찰의 이마에 태연히 총을 겨눈다, … .

    세상을 잘 알아서 빈틈없는 루이스, 그래서 살인 이후에도 침착하게 대처하지만, 그리고 경찰을 따돌리지만, 형사 할과 통화를 길게 해서 자신들의 위치를 노출시킨다. 경찰이 자신들의 전화를 도청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경감 할의 태도도 의문이다. 경감 할은 이 두 사람을 알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에게 매우 우호적이며, 연민을 느낀다. 마치 전지적 시점에서 두 사람의 행위와 심리, 억울함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실제 경찰이 그럴 수 있을까? 단지 범죄자일 뿐일 텐데. 그것도 살인과 무장 강도를 저지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ET의 마지막 장면 못지 않다. 절벽에 가로 막히고, 경찰에 포위된 그들은 투항하지 않고, 하늘을 날아 지상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자동차가 허공을 나는 동안 영화는 끝난다. 지상에서 이륙해서, 아직 추락하지 않고 날아가는 동안 영화는 끝난다. 야~, 이 멋진 장면을 어떻게 촬영했을까 하는 감탄이 든다.

    하지만, 멋있긴 하지만,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하겠지? 이 장면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이상한 거겠지? 역시 인문학적 상상력이 결여된 공돌이의 한계인가? ㅋㅋ

    두 여인이 권총으로 유조차를 폭발시키는 장면도 있다. 처음 보는 여성에게 계속 찝쩍대고, 어떻게 해 보려는 마초에게 시원한 한 방을 날리는, 통쾌한 장면. 극적 효과가 있다. 그러나 과장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거리에서 전문 스나이퍼도 아닌 두 여성이 그런 솜씨를 보인다는 게.

    최신 영화를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옛날 영화를 다시 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최신 영화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첨단 기법과 속도감 등은 없지만,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지나간 날들에 대한 추억도. 그 때는 못 보았던 것을 보게 되고, 보았던 것도 달리 생각하게 된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영화도 영화 그 자체보다 그 때의 상황, 그리고 그것을 같이 향유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더 또렷하다. 당시 이 영화는 억압받는 여성들, 특히 진보적인(?) 여성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 왔던 것 같다. 내가 최근에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역사적 의미-큰 맥락’에만 집중하지 않고, ‘사소한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 것은 이제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 자체는 새로울 게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문제제기가 필요없게 된 것은 아니리라. 오히려 참신하고 큰 대중적 울림을 주는 영화-계기들이 잦아든 게 아닌가 싶다.

 

    난 우리가 왜! 공중파에 강제로 시청료를 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시청료를 바치고 싶은 채널이 EBS이다. 이번 토요일(9/25) 밤11시에 상영될 영화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이다. 음~, 기대되는 걸.

- 2010.9.24.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