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생각, 노동자 이야기

노동체제의 변화와 노사관계의 과제 - 매일노동뉴스 기고문

바람2010 2013. 4. 22. 20:54

 

 

 

노동운동 재구성을 위한 토론회 1 - 노동체제의 변화와 노사관계의 과제의 주요 내용을 제 나름대로 정리하여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인데, ‘약간 다듬어서실었군요.

 

4/22자 매일노동뉴스에 실린 글을 보실려면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고,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7834

 

원문을 보시려면 아래를 참조하세요.

 

이 토론회(2/16)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다음 링크를 참조하세요.

http://next421c.tistory.com/76

 

 

 

 

노동운동 재구성을 위한 토론회 1: 노동체제의 변화와 노사관계의 과제

 

 

박근태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

 

 2/16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소장의 사회로 진행된 첫번째 토론회에서는 "노동체제의 변화와 노사관계의 과제"라는 주제 아래, 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선임연구위원이 <한국 노사관계 시스템의 발전방향>이라는 발제문을, 첫번째 토론자인 민주노총 이광규 기획국장이 <노사관계 측면에서 본 민주노조 운동의 성과와 한계>라는 토론문을, 두번째 토론자인 금속노조 경기지부 조건준 교육선전부장이 <노동을 지배하는 배신의 프레임들>이라는 토론문을, 세번째 토론자인 나상윤 전() 공공운수연맹 정책실장이 <공공부문 민주노조 운동의 성과와 한계>라는 토론문을, 마지막 토론자인 희망연대노조 김진억 나눔연대국장이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새로운 노조운동이 필요하다>라는 토론문을 발표하였다.

 

 한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정치적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왜 ‘양극화를 핵심으로 하는 사회적 위기’에 처해 있으며, 노동운동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가? 우리가 지향해야할 사회는 어떤 사회이며, 이를 이루기 위한 노사관계의 과제는, 노동운동의 역할은 무엇인가?

 

87년 민주화항쟁의 여파는 789노동자대투쟁을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폭발적으로 성장한 노동운동의 주도로 이른바 ‘87년 체제’가 성립하였다. 87년 체제에서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열망이 “노동권의 확대와 분배 정의 실현”이라는 성과를 낳았고,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 이루어졌다. “기술과 숙련의 고양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단위 조직과 교섭을 통한 분배”, “내부노동시장 발달”, “성과주의 도입”이라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의 맹아를 지닌 시기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노동이 사회적 행위자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이 ‘행복한 시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98년 외환위기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평생 직장의 신화’는 사라졌고 치열한 ‘고용경쟁’이 시작되었다. ‘일상적인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공포’가 노동자들을 짓눌렀다. 일부 대기업은 세계적 기업(global player)로 성장했으나, 다수 기업들은 쇠락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위계’가 강화되었고,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의 ‘가치이전’ – 불공정거래는 심화되었다. ‘경쟁과 양극화’는 이제 한국 사회 전반을 관통하게 되었다. 기업 안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에서도 주도권은 사용자에게 넘어갔다. 87년 노동체제 2기”(조성재) 혹은 “신자유주의 노동체제”(이광규)는 “재벌 중심 시장자유주의”, “노동배제적 자동화, 저부가 서비스 일자리 확산”, “내부노동시장 축소와 외주화”, 이로 인한 비정규직의 확대 등을 특징으로 한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은 깨지고 한쪽에는 막대한 부가, 한쪽에는 빈곤과 고통이 쌓인다.

 

98년 이후 한국사회와 노동체제의 변화에 노동은 어떻게 대응했던가? 강력한 공포에 질려 연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각자도생의 길을 걸었다. 기업의 생사가 곧 노동자의 생존에 직결되는 것을 극복하고 ‘사회적 생존권’을 확보하기는커녕 기업과 공동운명체로 더욱 밀착했다. 특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기업간 위계 강화’와 ‘가치이전’ 심화에 편승해, 그 성과를 나누었다. ‘계급 대립’은 ‘(분배를 둘러싼) 기업 내 노사 대립’으로 대체되었고, ‘계급 간 분할’ 못지 않게 ‘계급 내 분할’이 심화되었다. 조직노동은 ‘이기주의자’로 지탄받게 되었고, 사회적 지지와 지원을 잃었다.

 

노동체제와 노사관계는 사회 변화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핵심 버팀목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양극화를 핵심으로 하는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노동체제를 수립해야 하는가, 노사관계의 과제는 무엇인가? 이 문제에 올바르게 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먼저 대안사회와 사회발전전략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합의가 필요하다. “우리가 강소국이기 때문에 재벌과 같은 대표선수들을 중심으로 경제를 꾸려야 한다는 미망(迷妄)으로부터 벗어나”, “강중국 개념을 새로이 구상하면서 생산과 소비, 수출과 내수, 노동과 자본이 균형을 이루는 따뜻한 공동체”를 지향하고,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경제사회이념”인 “추격(catch-up)을 통한 선진사회 진입” 대신 “탈추격(post-catch up) 전략, 혁신과 통합”을 채택하고, “일과 생활의 공동체를 지탱하는 핵심 요인으로서의 노동”(조성재)을 자리매김하자는 제안은 깊이 검토해볼 만하다. “우리 사회개혁의 기본 방향은 ~ 재벌과 금융에 대한 사회적 통제 강화를 토대로 한 더불어 사는 새로운 공동체 건설이 되어야”하고, “노동을 중심으로 한 생산-분배-소비공동체의 강화를 중심에 놓는 대안적 사회발전전략”(이광규)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그러하다.

 

다음으로 조직률이 10%에 불과하고, 노사관계의 대표성도 이 정도에 불과한 현실에서 ‘취약 계층인 90%에 대한 대변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조직노동이 조직노동자만을 대변한다면, 이는 다시 조직노동 내부의 분할로 이어져 ‘기업 단위 이해관계’, ‘집단이기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노동은 ‘사회적 행위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며, 산업 차원이나 작업장 수준에서도 미조직 노동자들까지 대변하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드러난 문제점들만을 근거로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기본조직임을 부정해서는 안될 것이다. 미조직 노동자들을 걱정한다면, 이른바 ‘무노조 직원대표조직’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노동조합을 만들어 자기 권리를 쟁취할 수 있도록 ‘장애물들’을 제거해야 한다.

 

한국 사회 개혁에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재벌문제이다. 아주 강력한 사회적 압박이 가해지지 않는 한, 재벌 스스로 변화하거나 사회적 약자와 타협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재벌 문제에 대한 첫번째 고민은 ‘어떻게 강력한 사회적 압박을 만들것인가’ 이다. 또 하나의 고민은 ‘재벌그룹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재벌개혁의 교두보’가 될 수도 있고, ‘재벌의 방어진지’가 될 수도 있다. 재벌개혁의 선두에 서도록 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과제일 것이고,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재벌)그룹 노동조합협의회’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로서는 대기업 노조에게 '”이기주의자”라는 사회적 낙인을 돌파할 감동적 실천’, '의인(義人)'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풍부한 인적, 재정적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노동운동 형성을 위한 배후지 역할을 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기여를 확대하고, 노동운동 정책연구역량을 육성하는 것 같은, 실제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노동운동의 핵심 화두인 ‘산별 교섭’, ‘산별 노사관계’와 관련해, "대산별 아래 특성별, 업종별, 지역별 교섭 등을 다각적으로 배치하는" ‘다원적 산별교섭 체제’와, 이를 "지원하고 유리한 환경을 조성" '중층적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조성재), 교섭 구조의 재배치보다는 “자본을 산별노사관계의 장으로 견인해내기 위한 노조의 대중동원전략”이 중요하다는 주장(이광규)도 모두 타당하나, 그 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산별노조가 스스로를 ‘산업적 행위자’로 규정하고, 그에 걸맞은 실천을 하는 것이다. 산별 교섭에 사용자를 강제할 수단도, 유인할 수단도 마땅히 없는 상황에서 산별 교섭에 응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 산별 교섭을 법제화하라고 요구하는 것, 산별 교섭이 이루어지면 모두 해결될 것처럼 주장하면서 산별 교섭에만 집중하는 것은 공허하다. 산별노조라면 산업에 대한 정책, 산별 노사관계에 대한 정책을 가져야 하고, 산업적 수준의 실천을 부단히 전개해야 한다. 실력이 쌓이면 교섭력은 생긴다. 역사적으로도 노동조합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교섭권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이제 노동운동은 산업 속으로, 작업장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노동조합이 성과분배에만, 특히 임금의 양에만 관심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임금체계, 성과의 형성과 숙련, 경영참가와 일터 혁신으로 나아가야 한다. 동시에 노동운동은 사회로 나와야 한다. 생산만이 아니라, 소비와 생활까지, 사업장만이 아니라 지역까지, 현재 취업중인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예비노동자들과 퇴직 노동자들까지 노동운동이 포괄해야 할 대상과 과제는 참으로 많다. 노동운동의 재구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