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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민중들은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가 _양규헌

바람2010 2011. 3. 17. 21:40

일본에서 벌어진 일련의 재앙으로 인해 중동문제는 관심에서 벗어난 느낌입니다.
다른 나라와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리비아 상황에 대해, 노동자 역사 한내 양규헌 대표가 쓰신 글입니다.참고하시길 ...

http://www.hannae.org/newsletter/content.aspx?idx=36&sort=&segenre=&seword=&page=1



 
리비아 민중들은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가

 

양규헌 (노동자역사 한내 대표)

 

미국 발 경제위기는 북아프리카 민중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줬다. 유럽 수출에 의존하는 북아프리카 경제는 수요하락으로 급격하게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북아프리카 수출량이 2008년 30%대에서 2009년 10%대로 떨어짐으로써 이들 나라가 60년 만에 최악의 경기침체를 맞고 있다.

신자유주의 공격으로 누적된 빈곤에 저항하는 북아프리카의 민중의 투쟁은 튀니지를 시작으로 이집트를 넘어 이란 등 아랍권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리비아는 카다피의 강경진압이 유혈사태로 번지면서 내전양상이 되고 있으며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

리비아 사태의 발발 원인도 주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민중의 빈곤에서 비롯되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리비아 봉기는 빈곤으로부터 출발했으나 민중봉기의 폭발력이 확산되게 된 이유는 부족 간의 헤게모니와 카다피의 용병 고용이 한 몫 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여타 주변 국가들과 구조적 차이가 있는 것은 리비아의 역사성에서 비롯되었다.

 
새로운 통치체제를 구축한 카다피

 리비아는 외세의 지배에 저항해 온 역사이다. 2차 대전 이전에는 터키와 이태리의 지배를 받았으며 2차 대전 중에는 영국, 프랑스 군에 점령되어 군정통치를 받았고, 2차 대전 후인 1951년 '연방왕국'으로 독립을 선포했다. 1969년 약관 27세인 카다피 대위를 중심으로 청년 장교그룹이 트리폴리에서 무혈 혁명을 일으키며 전국을 장악함으로써 ‘왕정을 폐지’하고 새로운 정치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다.

권력을 장악한 카다피는 제국주의 시녀였던 왕정을 몰아내고 이슬람사상과 사회주의를 주장하며 ‘사회주의 인민 리비아 아랍국'을 세우고 석유시설을 국유화했다. 그리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의 길을 만들었고, 교육에 집중함으로써 문맹률을 크게 낮췄다. 아랍권에서 그는 우익 근본주의세력인 '알카에다'와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카다피가 집권직후에는 계획경제를 표방하며 사회주의적 체제로의 시도를 한 부분과 제국주의와의 대립적 관계를 설정한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혁명위원회가 모든 기관, 기구 등을 재배해온 집권 자체는 독재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카다피의 긍정성은 소멸되었다.

 
리비아의 신자유주의 도입

 카다피는 2003년에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핵 포기 선언'을 했다. 그러나 미국은 핵 포기의 대가로 리비아에 약속했던 보상을 외면했고, 이 과정에서 '카다피'는 반미기조를 높이게 되었다. 얼마전에 카다피는 나토에 맞서 아프리카 국가들도 '제2의 나토'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군사적으로 제국주의들과 군사적 대결불사를 선언한 '카다피'는 베네주엘라, 이란 등과 '반미 저항연대' 구성에 매진해왔다는 것도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 뒤늦게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리비아는 석유의 민영화로 이윤을 축적하는 부르주아들이 생겨남으로써 국유화시기에 보장되었던 공공성과 의료지원제도는 축소되고 민영화에 따른 민중의 고통이 부르주아들의 부로 귀결되었다. 그 자체가 신자유주의의 당연한 결과로 보여진다.


 
'카다피'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과 대응

 리비아 사태에 대해, 국제사회의 대체적인 분위기와 여론은 ‘카다피 응징’으로 모아진다. 그러나 아프리카지역에서는 카다피 응징의 분위기가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카다피 축출을 위해 미국이 앞장 서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다양한 모색을 하는 거 같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비행금지구역’에 대해 카다피 반군의 강한 요청이 있으나 국제사회에서 합의가 불가능한 상태(중국, 러시아 반대)이고 나토 역시 유엔 결의 없이 움직일 수 없다고 선을 긋기 때문이다.

리비아 정규군 중 상당수가 이탈하여 카다피를 향해 총구를 겨냥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시간이 경과할수록 카다피의 위세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카다피 망명설’ 등이 언론에 보도될 때, 카다피의 권력은 풍전등화에 내 몰리고 있는 듯 했지만 현재의 상황은 전혀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카다피’는 유전지대인 브레가를 재탈환했고 반군의 거점인 뱅가지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는 근거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카다피 아들들이 이끌고 있는 특수부대와 보안부대의 위력이고, 둘째는 아프리카에서 공수되는 ‘용병’이다. 이 용병은 개별적으로 군인만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와 군대를 조직적으로 지원하는 상황이고 그 중심에 알제리가 정부차원의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다피 축출’에 혈안이 된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알제리의 범정부적 군사지원은 외면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알제리'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며 그 의도는 리비아 사태를 장기적으로 끌고 간다는 전략인 것으로 판단된다. 팽팽한 힘의 균형이 유지되면서 진행되는 전투는 장기적인 전투인 동시에 상호 소모적이라는 결과를 기대하는 게 미국의 의도가 아닐까. (주변국과 반군의 군사개입에 대한 요청)

승과 패의 결과만이 남아있는 형국에서 '반카다피 진영'이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직접개입을 거부하는 이유는 민족성, 역사성에 기인하는 리비아 민중들의 정서를 이해하기 때문인 동시에 석유자원에 눈독을 들이는 '제국주의의 의도'를 알기 때문에 '미국은 자기나라 국민이나 신경 쓰라.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며 '비행금지구역설정을 요청한다'는 간접개입만을 요청하고 있다.

 
'사회주의 인민 리비아 아랍국' 투쟁의 요구와 성격은 무엇인가

 ‘반카다피 진영’의 구성은, ‘카다피부족’에게 협력중단을 선언했던 가장 큰 규모의 부족인 ‘와르팔라’부족과 ‘주와야’부족이며 부족의 대표로는 ‘마가리하’부족장이 반군지도부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트리폴리 진격을 지휘한 ‘후세인’ 대령, 69년 카다피와 함께 혁명의 동지였던 ‘오마르 하리리’와 ‘잘릴’ 전 법무장관이 반군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된다.

장기적 내전 양상으로 돌입한 리비아 민중들의 투쟁 슬로건에서 사회구조에 접근하는 요구는 보이지 않는다. 장기집권 ‘카다피독재는 물러나라’고 요구하지만 진정한 민주화에 대한 요구 또한 보이지 않는다. 외세개입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들리지만 '사회주의 인민 리비아 아랍국'의 국가 명에 걸 맞는 ‘사회주의로 이행’만이 빈곤을 벗어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반카다피군’의 요구와 주장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독재자 카다피 축출의 대 슬로건 아래 '우리 부족이 더 이상 권력에서 소외되지 않겠다.'는 목소리와 반군대오에는 ‘왕정시대 깃발’도 나부낀다고 한다. 최근에는 '반군을 돕지 않았던 국가들에 대해서는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으면 원유공급을 금지하겠다'고 협박성 경고를 했다.

 
한국에서의 다양한 입장과 상황

 리비아 대사관 앞이 시끄러워졌다. 카다피 응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모든 세력들의 단일한 요구로 메아리 치고 있다. 물론 필자도 ‘카다피 독재’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며칠 전 국회에서 '중동, 아프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당한 민주화 요구를 적극지지 한다'는 입장과 함께 카다피정권의 유혈진압에 대해 규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용산참사와 쌍용차의 살인진압에 대해 유혈진압에 대한 규탄은 고사하고 불순세력 운운하던 한나라당이 앞장서 입장을 정리했다는데 비열한 정치의 기만성이 보인다.

변혁진영 내부에조차 리비아 사태가 카다피와 민주화 세력과의 대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리비아투쟁의 성격과 향후 전망에 대한 고려 없이 민중들의 투쟁이기 때문에 무조건 지지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무조건’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위해서는 반군이 추구하는 이념과 목표에 대해 안타까움이 담겨야하고 변혁으로의 이행을 위한 투쟁만이 리비아 문제의 근본적 해결임이 강조되어야 한다.

길지 않은 우리 투쟁의 역사가 반영하듯 과정에 대한 정당성과 중요성을 담보해 내기 위해서는 지향점과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명백한 목표설정에도 불구하고 민중을 억압하는 지배계급의 제도적 장치와 이데올로기 공세로 운동의 목표와 본질이 변해왔던 게 최근 우리 운동의 길지 않은 역사라고 판단한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혁명론자의 일부는 중동, 리비아 투쟁을 놓고 '보라 이것이 혁명이고, 중동 혁명이 우리에게 가르친다.'고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쿠바, 베네주엘라가 카다피를 지지한 것을 두고 '21세기 사회주의의 기만성’이라고 규정했다. 리비아 투쟁이 정말 혁명가들을 가르치는 것일까, 나아가 지지선언 자체가 21세기 사회주의를 재단하는 잣대로 작동하는 것일까.

혁명은 일반적으로 사회구성체나 정치체제의 급격한 변화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때문에 리비아 투쟁이 혁명가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야만성을 비판하고 사회구성체에 접근하는 내용에 사회주의를 향한 혁명성이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쿠바, 베네주엘라가 카다피를 지지하는 것에 대해 필자도 흔쾌히 동의하지 않지만, 그들의 지지의도가 알카에다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것과 리비아 반군에 알카에다가 개입하고 있다는 정보들이 나돌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임을 전제로 이해해야 하지 않는가. 이를 '반미저항 연대'의 연장으로, 반제국주의 정서로 이해하지 않은 채, 21세기 사회주의 성격을 하나의 사건에 건조하게 빗대어 규정해 버리는 것은 망원경으로 관찰해야할 사물을 현미경만을 고집하는 오류에 다름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 민중에게 투쟁은 삶의 가치 이상 중요하다. 그럼에도 노동자계급이 모든 투쟁을 지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 무엇을 위한 투쟁인가’가 분석되어야 한다. 또한 과격한 양상을 띤 투쟁이라고 무조건 지지할 수도 없는 것이다.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살벌한 투쟁을 벌였던 가스통 할아버지들의 투쟁을 지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연대투쟁과 계급투쟁은 투쟁의 목표와 목적에 대한 합의가 되었을 때 동력이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혁명가들에게, 사회주의자들에게, 변혁을 주장하는 동지들에게 감동과 가르침을 주기 위한 투쟁은 자본주의에 대한 분명한 태도와 사회주의를 향한 결의와 확신이 넘쳐날 때 가능하다.

민주화에 대한 요구를 찾아볼 수 없고, 부족 간, 부르주아 간, 관료출신들의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카다피’에 대한 분노로 봉기에 참여한 '사회주의 인민 리비아 아랍국' 민중들에 대한 안타까움 없이 민중봉기라는 현상적 상황에 감동하며 ‘혁명적 노동자정당을 건설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류를 낳을 수도 있다. 벅찬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계급성의 토대가 확인되지 않는 가운데 혁명적 ‘노동자당건설’ 주장은 현실적으로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가 될 것이다.

인간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어야 하고, 목적을 향해 자유로운 공동체를 추구하기 위한 리비아 민중들의 투쟁의 성과가 ‘전근대주의’자들과 관료들에게 모아지지 않고, 노동자계급의 변혁을 밝혀주는 횃불이 되기를 기대한다.